* 캐붕을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 욕설 주의. 오타 주의.

* 일부 캐릭터 ts 주의.



빛 한 점이 아쉬운 성채에서 낮과 밤이란 불필요하다. 때문에 성채민들은 낮과 밤을 구분하지 않고 그 때, 그 때 흐름에 맞추어 생활을 꾸려 나갔다. 그리고 그것은 1번가의 창관들 또한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 곳들은 시간대에 따라 '상품'들이 달라지기만 할 뿐 언제나 활짝 열려 찰나의 쾌락을 탐하러 온 이들을 끊임없이 유혹했다.


1번가에 집중된 창관들은 '헤이(黑)'의 좋은 자금줄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조직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스가와라는 촘촘히 붙어 앉은 건물들 사이 어디쯤에서 벽에 등을 기대었다. 익숙한 한기가 벽에 붙은 등을 타고 올랐다. 그 기분 나쁜 서늘함에 스가와라는 무기력한 몸짓으로 담배 끝에 불을 붙였다. 끝이 달아오르자 기도를 타고 폐부 가득 담배연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추위를 가시게 하기 위하여 태운 담배는 취지와는 정반대로 오히려 몸 곳곳에는 더욱 적나라하게 한기가 달라붙었다. 깊숙히 들어찼던 연기를 한숨마냥 토해내고, 그는 쓰게 변해버린 입맛을 작게 다셨다.


담배를 핀 후에 남은 이 끈적한 텁텁함이 싫었다. 그러나 끊을 수는 없다. 하등 도움될 것도 없는 주제에 중독성은 어찌나 좋은지. 꼭 이 거지같은 성채와도 같은 새하얗고 짤퉁한 막대에 스가와라는 평소의 유한 모습과는 전혀 반대로 선 고운 얼굴을 왕창 구겼다.


"좆같네, 진짜."


목표 없는 욕설이 담배 연기에 섞여 흐려졌다.



스가와라가 서있는 골목 정면으로 보이는 가게들 안으로 일관성 없는 연령대의 남성들이 걸어들어 간다. 청년도 있고, 중년도 있고, 노인도 있었으며, 성채임을 감안했을 때, 그럭저럭 형편이 좋아보이는 이도 있었고, 과연 화대를 지불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드는 자들도 있었다. 허나 스가와라는 알고 있다. 비록 저들의 겉가죽은 천차만별이었느나, 속사정은 하나같이 별반 다를 바가 없음을. 한 순간의 쾌락, 온기, 욕구의 배설. 그리고 그 아래에는 그것들에 뜯어먹히는 피식자들의 억눌인 고통과 울음, 신음과 탄식이 거름처럼 스며있음을 말이다.


새삼스러웠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그도 역시 저 안에서 짐승마냥 사내들 밑을 구르고 있었는데. 지금은 또 하나의 포식자, 아니 그 포식자의 옆자리를 꿰차고 그들을 찍어 누르고 있다. 낮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인생사 새옹지마.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앗, 뜨..!"


끝을 모르고 이어지던 상념에 한 모금 밖에 하지 못 한 담배가 필터를 타고 들었다. 화끈한 열기에 놀란 스가와라는 손가락 사이에 끼웠던 담뱃대를 바닥으로 내던졌다. 버려진 담배는 바닥에 고인 구정물에 연기도 피워올리지 못하고 불씨를 꺼트렸다. 두 마디 조금 안 되게 짧닥만 해진 것이 검게 젖어들었다. 그 위로 스가와라의 유리알 같은 옅은 시선이 박혔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저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사내 새끼였으니까.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몰라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적어도 누구 씨인지 모를 새끼를 배에 품는 일을 없었지 않았나.


이 시궁창에서 매춘부를 상대로 제대로 피임을 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그나마 그는 남자였기에 자연의 섭리대로 그 만큼 몸을 굴리고서도 애가 들아서지 않았다. 참으로 다행인 일이었다.


칙칙한 검정색 위로 물감이 번지듯 주황빛이 어린다. 밝은 주황이 번지고, 번져 선명한 인상을 만들어 낸다. 작은 강아지마냥 복실복실한 머리카락, 뽀얀 피부에 그에 걸맞는 커다란 눈, 작은 손과 발.


히나타 쇼요. 히나타. 쇼요. 주인을 닮은 동글동글한 이름이 입안에서 이리저리 구른다. 스가와라는 그 조그마한 아이를 떠올리며 작게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그것도 이내 꺼져가는 불씨만큼이나 빠르게 삭아들었다.


작은 아이.
제 피붙이 같은 아이.
그리고 그가 지키지 못 했던 아이.


만약 히나타가 자신의 아이었다면 그는 직접 제 손으로 그 아이를 이 더러운 곳에서 끌어냈을 것이다. 그 가는 목에 손을 걸고, 있는 힘껏 힘을 주어 그 가느다란 숨구멍을 틀어 막았을 것이다. 이 수렁같은 지옥 속에서 자신의 피붙이가 그 가련한 생을 이어가는 모습을 볼 자신따위는 없기에 첫 울음이 끝나기도 전에 숨통을 끊어버렸겠지.


그러나 한편으로 그러기에 스가와라 코우시라는 남자는 너무 외로웠고, 비참했으며, 아이를 사랑스러워 했다. 10년이 훌쩍 넘었음에도 스가와라는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옹알이도 채 떼지 못 한 아이에게 끊임없이 속삭이던 그 끔찍한 애정을.


쇼요. 쇼요. 네가 내 아이였다면, 나는 너의 목에 손가락을 얽었을 거야. 그리고 망설임 하나 없이 가는 목을 조아 생기 넘치는 너의 숨결이 옅어져 가는 모습을 지켜 보았겠지. 그리고 나는 행복하게 울었을 거야. 예쁜 쇼요. 예쁜 내 아이. 네가 내 아이가 아니라서 다행이야. 다행이야, 쇼요. 작은 쇼요. 귀여운 쇼요.


"스가와라 씨."


강박적으로 흘러가는 생각들을 지독히도 덤덤한 목소리가 갈랐다. 돌아간 시야에 비치는 얼굴이 훤칠하다.


"아, 카게야마."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니, 아니. 내가 빨리 온거지. 쇼요는?"
"아직 자고 있습니다."


그 원인을 모를 정도로 순진하지 않은 스가와라는 금세 짓궃은 웃음을 얼굴에 덮어썼다.


"주체가 안 될 정도로 우리 쇼요가 예쁜 건 알지만 말이야. 카게야마 군? 자제를 좀 하는 게 어때? 너도 알다시피 둘이 신체적 능력치가, 응?"
"ㄱ, 그런! 아, ㄴ, 닙! 아닌! 아닌데요!!"
"네, 네. 고장난 거 같으니까 진정 좀 해줄래, 카게야마."


밤놀이에 대해 알만큼 아는 주제에 카게야마는 히나타가 얽히기만 하면 꼭 동정처럼 순진한 반응을 가감없이 보였다. 냉한 얼굴로 칼을 휘두르는 모습과의 괴리에 마뜩치 않았던 것도 옛말이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과 목덜미가 퍽 기꺼워 낄낄거리며 잔웃음을 흘려대던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의 단단한 어깨를 유쾌하게 두들겼다. 평소의 둘을 아는 이들에게는 그 격없는 몸짓이 한없이 어색했지만 당사자들에게는 마냥 익숙하기만 했다.


스가와라는 카게야마 토비오가 마음에 들었다. 사와무라 다이치의 조커로써도 마음에 들었지만, 그 무엇보다 히나타 쇼요의 남자로써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자신이 하지 못 한 것을 그는 했다. 그것만으로도 스가와라는 카게야마 토비오가 만족스러웠다.


"... 좀 바보같지만.."
"예?"
"응? 아아. 아니야, 아무 것도."
"? 예."


궁금할 법도 한데 카게야마는 아무런 의문도 내비치지 않는다. 보이는 태도와 깔끔한 대답처럼 그는 정말로 스가와라의 말에 관심이 없을 것이다. 카게야마 토비오는 지나칠 정도로 타인에게 무관심했다. 그리고 이 인형같은 남자가 유일하게 집중하는 대상은 하나였다. 작은 히나타. 히나타 쇼요.



카게야마 토비오는 인간성이 결여되어 있다. 히나타 쇼요가 카게야마 토비오의 유일한 인간성이다.



그 사실에 스가와라는 만족하고, 안심한다. 카게야마는 히나타를 지킨다. 그 무엇을 희생하더라도. 



반쪽짜리 조커에 사와무라 다이치는 만족하지 못 하겠지만, 스가와라 코우시는 만족한다.


"일하자, 카게야마."


너의 아가씨를 위해서.


기꺼운 마음을 담아 그는 다시 한 번 환하게 웃는다.




***


사와무라 다이치는 의외로 움직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웬만한 일이 아니면 그가 밖으로 나오는 일은 극히 적었다. 그로 인해 그의 측근들이 직접 사와무라의 거처로 찾아가는 일은 '헤이(黑)'에서 생각 외로 빈번했다. 물론, 한없이 신중한 성격 상 직접 안까지 들어오는 이는 스가와라를 제외하고는 겨우 둘 밖에 없었다.


"어서 와, 엔노시타."
"네, 보스."


그 둘 중 하나인 엔노시타 치카라가 유순한 얼굴로 허리를 숙였다 폈다. 그의 인사를 받으며 스가와라가 떠난 침대에 홀로 앉아 사와무라는 총기를 살폈다.


"이번 일은 어땠어?"
"별 것 없었습니다. 쓰레기는 카게야마가 버렸고, 재활용된 것까지 확인했습니다."
"그래."


옆 자리에 총기를 내려놓은 사와무라는 살벌한 그의 자리와는 달리 퍽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수고했다."


공치사가 엔노시타의 정수리 위로 자비롭게 떨어져 내린다. 충직한 제 수족을 도닥이며 사와무라는 얼마 전 제 코 앞에서 배짱 좋게 발톱을 드러내던 짐승 한 마리를 떠올렸다.


'산지아오(三角)'였던가.


단시간에 불어난 세력으로 그 콧대가 얼마나 높아졌는지 조만간 헤이를 뒤집어 엎을 것이라 목소리를 드높였더랬다. 기세가 생각보다 볼 만 해서 성채의 네 보스들 중 그나마 자비롭다는 사와무라의 신경을 상당히 거슬렸다. 회합 전에 정리하지 않았다면 비꼬기 좋아하는 고양이에게 제법 실한 먹이를 물려주었을 것이 불을 보 듯 뻔했다. 이와이즈미나 보쿠토처럼 다혈질은 아니었지만, 그도 호전적인 기질만큼은 셋과 다를 바가 없었기에 그런 상황은 달갑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홍(紅)'에서 뱀들을 정리했다고?"
"네. 회합이 끝난 날, 하이바 리에프와 후쿠나가 쇼헤이를 행동 대장으로 내세워서 정리했습니다."
"하이바? 쿠로오가 마음이 많이 상했나보네."


사와무라는 팔짱을 끼고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대며 진득한 웃음을 흘렸다. 그는 제 대신 화풀이 감이 되었을 '두슈어(毒蛇)'에게 심심한 감사를 담아 명복을 빌었다. 명성 자자한 '홍(紅)'의 괴물에게 물렸을 테니 영 보기 좋은 꼴은 아니게 됐을 것을 굳이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엔노시타의 말에 사와무라의 진한 갈색 눈동자에 호기심이 어렸다. 무언의 허락이 떨어지자 엔노시타는 차분한 얼굴로 다시금 입을 열었다.


"쿠로오 테츠로가 여자를 안았습니다."
"음?"


그가 궁금했던 것에 비하자면 한없이 격이 떨어지는 보고였다. 하지만 그가 아는 엔노시타는 이런 시답지 않은 일을 보고하기 위해 허락을 구할 멍청이가 아니다. 그를 재촉하는 대신 사와무라는 팔짱을 풀고 손깍지를 껴 머리를 기댔다. 느긋한 몸짓에 따라 상체의 올라 붙은 근육이 유려한 선으로 움직였다.


"회합 날 '안'에 직접 들인 것을 확인했습니다."
"'안'에? 직접?"
"네."


이건 또 의외다. 쿠로오 테츠로가 여자를 '안'에 들여?


생각지 못 한 소식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쿠로오 테츠로가 암컷을 '안에 들였다는 것'이 전혀 예상 밖이다.


성채의 권력자들에게 다리를 벌려줄 암컷은 많았다. 하물며 옆 자리가 비어 있는 쿠로오 테츠로임에야. 위로 올라서고 싶은 이들에게 그만큼 매럭적인 목표도 몇 없었다.



위세에 걸맞게 몸을 데워줄 이들은 차고 넘쳤고, 그것을 거부할 줄 생각이 없는 쿠로오 테츠로는 매번 새로운 꽃을 찾는 나비였다. 그는 제 앞으로 던져지는 몸뚱이들을 즐겁게 취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그는 한 번 안은 암컷은 다시 찾지 않았다. 당연히 그 꽃들 중  '홍(紅)'으로 초대되는 이는 없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흥미로웠다. 그런 쿠로오 테츠로가 왜 여자를 안에 두었을까. 안에 두었다고 하니 꽤 중요하게 생각하는 존재인 것같지만, 쿠로오 테츠로의 성격 상 그렇게 중요한 존재라면 이렇게 대대적으로 끼고 돌아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가능한 한 숨겼으면, 숨겼지. 음험한 만큼이나 남들에게 자신이 보여지는 것을 자존심 상해하는 남자이니까. 그럼 답지 않은 변덕? 아니면 눈에 뵈는 게 없을 정도로 사랑에 빠졌다던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사와무라의 얼굴이 눈에 띄게 안 좋아졌다. 쿠로오 테츠로가 사랑이라니. 생각만 해도.


"토할 거 같군."
"예?"
"아니, 아무 것도. 여자는?"
"쿠로오 테츠로가 안에 들인 이후로 밖으로 나온 적이 없습니다."
"그래."


안으로 들였다는 소식보다는 예상 가능한 범위 안의 행동이다. 사와무라는 그저 변덕으로 여자 하나 들였을 뿐일지도 모르는 일에 자신이 지나치게 반응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상대는 쿠로오 테츠로였다. 방심하는 순간 언제 목덜미를 물어 뜯길지 몰랐다.


나머지 이야기를 들으며 한 쪽으로는 여러 가설들이 세워졌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보고를 모두 끝낸 엔노시타가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여보이고 뒤를 돌아나갔다. 조심스럽게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사와무라는 바로했던 몸을 아래로 미끄러트렸다.


고양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상상을 한 뒤라 영 속이 좋지 않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능성이 없는 일도 아니라고 생각을 하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그는 인정하기 싫지만, 의외로 사와무라 다이치와 쿠로오 테츠로는 퍽 닮았다. 은근히 꼬인 속이라던가, 지나치게 신중한 점이라던가, 그에 기반한 관계의 구분이라던가 하는 점들이. 그렇기에 그는 안다. 오히려 쿠로오 테츠로 같은 인간이 앞, 뒤 없이 사랑에 빠질 수도 있음을. 그가 그랬으니까.


쉼없이 생각하며 사와무라는 한참 전에 식은 옆자리를 느릿하게 더듬었다. 그리고 손끝은 답지 않게 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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