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리지널 캐릭터 주의.

* 오타 주의.


그들이 바테리라를 떠나고 로저는 한 동안 선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곧 밖으로 나왔고 평소와 같이 생활했다. 그런 로저의 모습에 다른 이들도 점차 평소의 생활로 돌아갔다.


바람을 타고 오로 잭슨 호는 빠르게 전진했고, 그들을 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없다고 생각했다.


사고는 언제, 어디서나 생겨날 수 있는 법이고, 그것은 로저 해적단도 예외가 아니었다.


좀처럼 보기 힘든 아주 거대한 폭풍우였다. 흔들리는 배의 갑판은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미끌려 곧 바로 바다를 향해 추락할 것 같았다. 파파베르는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 들 정도로 강하게 밧줄을 부여잡았다. 레일리가 다가오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다른 이들의 상황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모두들 떨어져 나가지 않기 위해 배의 곳곳에 좀 더 바짝 몸을 붙였다.


이리저리 정처 없이 흔들리는 밧줄에 180cm가 넘는 몸뚱이를 맡기고 있으려니 팔이 떨어질 것 같았다. 파파베르는 이를 악물었다. 포기라는 것을 모르는 생존 본능이라는 것이 그의 귓가에서 속살거렸다. 살아야 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너는 살아남아야 해. 그러나 마음과 달리, 육체는 이미 한계에 부딪혔다. 손끝에서부터 점차 힘이 빠지고, 조금씩 조금씩 손아귀 안의 밧줄이 미끌어지고 있었다.


"파파베르!!!"
"파파베르, 꽉 잡아!!!!"


귀를 찢을 것만 같은 천둥소리에 섞여 레일리와 샹크스의 목소리가 그에게 채 닿지도 못 하고 스러졌다. 허나 천둥소리가 없었다 할 지 라도 지금의 상황에서 파파베르에게 둘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을 만한 정신머리는 남아있지 않았다. 가운데 언저리를 잡고 있던 밧줄은 이제 끄트머리 밖에 남지 않았다. 손바닥에 난 상처로부터 흘러나온 피가 손목을 따라 흘러내렸다. 결국.


"안 돼!!!!!"
"파파베르!!!!"


파파베르의 손에서 미끌어져 나간 밧줄이 거친 해풍을 타고 맥아리 없이 흔들렸다. 지지할 곳 하나 없이 배에서 튕겨져 나간 파파베르가 시커멓게 파도가 일는 바닷물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레일리가 파파베르에게로 향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으나 로저가 한 발 빨랐다. 그는 레일리의 뒷목을 후려친 후, 간발의 차로 그를 잡아챘다. 평소였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만 흥분 때문에 사지를 분간할 수 없는 지금의 그에게는 그 수가 빠르게 먹혀들어 갔다.


무겁게 늘어지는 레일리의 몸을 로저가 이를 사려 물며 받쳐 들었다. 이리저리 흔들려 정신없이 보게 된 옆에는 가반이 샹크스의 허리께를 자고 있었다. 샹크스 역시 가반의 손에 기절을 당한 듯, 몸에 힘이 없었다.


찰나의 순간 파파베르를 낼름 삼켜버린 흉포한 바다는 여전히 사나운 기세를 자랑하며 넘실거렸다. 빠드득- 그 사랑스럽고 증오스러운 존재를 내려다보며 로저는 이를 갈았다. 그의 뇌리 속에 애처로운 모양새로 바다를 향해 빨려 들어가던 파파베르가 잔상처럼 남았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스스로가 혐오스럽고, 한심했다. 조금 더 조심했어야 했다. 조금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다. 안일했던 과거의 자신을 탓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사고는 벌써 발생했고, 그는 동료를 지키기 못 했다. 그 어떤 말로 변명하든,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레일리의 몸이 계속해서 미끌렸다. 로저는 그런 그의 몸을 아등바등 한 손으로 부여잡았다. 레일리라도 살려야 했다. 깨어난 뒤 저에게 욕을 하던, 칼부림을 하던 일단 그의 눈 앞에 남아 있는 동료만이라도 살려야 했다. 선장일 수 밖에 없는 그는 얼굴을 끊임없이 내려치는 비를 맞으며 눈을 감았다.


"미안하다...."


비참한 자기혐오와 죄책감에서 비롯된 들을 사람 없는 한 마디가 처량하게 공중을 부유했다.



***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인간과 달리 낮은 체온을 가진 신체 특성 상 추위에 무던한 것이 무색하게도 느껴지는 한기에 파파베르는 몸을 둥글게 말았다. 그에게는 참으로 다행스럽게 파파베르의 몸을 감싸고 있는 것은 차가운 바닷물이 아닌 보송보송 잘 말린 포근한 이불이었다. 그가 몸을 달달 떨며 이불을 파고들자 누군가가 좀 더 꼼꼼히 그것을 덮어주었다. 몸부림에 흐트러졌던 베개까지 다시 똑바로 머리 뒤에 괴어준 후 손길이 멀어졌다. 그러나 그것을 잠과 피곤에 취해 정신이 없는 와중세도 파파베르가 용케 잡아챘다.


"레.... 이..... ㄹ..."


미처 완성되지 못 한 이름을 되뇌며 그는 잡은 손을 당겼다.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았는지 -하지만 잡힌 손의 주인에게는 미약한 힘일 뿐이다.- 인사불성인 와중에도 파파베르는 그것을 당겼다. 몇 차례 손의 주인이 잡힌 손을 빼내기 위해 팔을 흔들었지만 소용이 없어 먼저 백기를 들었다. 결국 파파베르는 다시금 얌전해진 손을 부여잡고 퍽 만족스러운 얼굴로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머리맡으로 바람이 빠지는 듯 가벼운 웃음 소리가 내리고, 잡히지 않은 손이 그의 배를 살살 도닥이며 잠기운을 더욱 부채질 했다.


***


The story of people who have left.

Rayleigh.

비스듬히 누운 레일리는 팔로 시야를 가렸다. 그로 인해 눈을 뜨고 있지만 시야는 눈앞의 캄캄한 어둠에 잠겼다. 한 치 앞을 볼 수 가 없다. 그것이 마치 현재 그가 처한 상황 같았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을 쉬고 있지만 숨통이 막혔다. 내장부터 끓어오르는 뜨거운 덩어리들을 레일리는 애써 삼켰다. 그는 지금 자신이 어디까지 왔는지, 어디를 디디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알고 싶지 않았다.


아프게 얼굴을 내리치며 시야를 방해하던 빗방울들과 그것들에게 고스란히 노출되어 떨어져 내리던 파파베르.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파파베르의 마지막도 기억할 수 없다.

 
그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리버스 마운틴을 지나 그랜드 라인으로 귀환한 후였다. 처음으로 넋을 빼고 시체마냥 누워있는 그에게 로저는 파파베르가 곧장 바다로 떨어졌노라 이야기했다. 그의 입으로 듣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으나 그 말을 직접 마주한 레일리는 그것이 꼭 사형 선고 같다 생각했다. 눈알을 굴리자 주변을 채운 동료들은 그 못 지 않게 참담한 얼굴이었다. 개 중 로저의 얼굴은 대역죄인 마냥 길게 그늘이 졌다. 그 모습을 보노라니 누워있는 것은 저인데도 문득 무거운 피로감이 몸을 짓누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레일리는 꺼칠한 두 손으로 얼굴을 쓸며 자리를 비켜주길 부탁했더랬다. 그것이 불과 하루 전 일이다.


가리고 있던 팔을 치워낸 레일리의 눈이 어딘지 모를 곳을 더듬었다. 탁하게 변해버린 검은 눈동자는 책상 언저리를 배회하다, 옷장 근처로 옮겨졌다. 잠시 그것을 담아내던 눈동자가 이번에 문이 열린 화장실을, 문 앞에 파파베르의 옷가지가 섞인 빨랫더미를, 그리고 마침내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그의 옆.


도톰한 이불보 위로 파파베르가 나른하게 엎드려 있다. 초콜릿에 우유를 섞은 듯 보드라운 피부로 그의 손길을 부르고, 베어 나오는 향기로 그를 아찔하게 만들고, 달뜬 숨소리로 그들 충동질 하던 그의 꽃이 지금 이 곳에 있다. 차마 어루만질 수 없어 망설이던 레일리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다시 눈을 뜬다. 방금의 것은 부질없는 허상이 그를 농락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양, 그의 옆자리에 남은 것은 싸늘하게 식은 이불뿐이다.


없다. 없어져 버렸다. 그는 차마 제 입으로 직접 파파베르의 죽음을 올릴 수 없었다. 그리 익숙하게 느꼈던 죽음이라는 것이 처음으로 소름끼치도록 두려워졌다. 서른이 조금 안 되는 나이 바다로 나와 떨어질 수 없는 그림자 마냥 저와 함게 하던 그것이 오늘에서야 낯이 설었다.



 '죽음(Death)'이라는 그 다섯 글자가 그의 꽃을 품 안에서 앗아갔다. 파파베르의 서늘한 생기, 미소, 목소리, 향기. 그 모든 것을 레일리에게서 폭군 마냥 갈취했다. 그는 다시는 한 손으로 눈을 가리고 고개를 떨구었다.


툭- 툭- 끊어낼 수 없는 미련과 체념이 뒤섞여 이불 위로 무늬를 새겨 넣는다. 울음소리는 없다. 이불 위로 떨어지는 투명하지만 진득한 감정 덩어리들이 그것을 대신 했을 뿐이다.


.


Shanks.



그랜드 라인으로 돌아왔다. 그만 빼고.


정신없이 폭풍우를 뚫고 리버스 마운틴을 넘자 날씨는 금세 쾌청해졌다. 햇볕은 적당히 따뜻하고, 바람은 산들산들 소년의 뺨을 어루만진다. 항상 마음을 들뜨고, 설레게 만들었던 바다의 냄새가 코끝을 감돌았다. 그러나 그런 것들 모두 지금의 샹크스에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따뜻하고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그는 홀로 거센 풍랑을 맞은 뗏목 마냥 어쩔 줄 몰라했다.


무릎을 세우고 발발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감쌌다. 머리꼭지에서 열이 몰리는 듯 싶더니 한 순가 오한이 들었다. 열이 올랐다, 내렸다, 몸이 떨렸다, 멈추었다 정신없는 와중에서도 머릿속만큼은 표백제에 담궈졌다 건저 낸 것 마냥 멍했다. 새하얀 머릿속에서는 한 가지의 사실만이 제 존재감을 과시하며 둥둥 떠다녔다. 알고 싶지도, 인정하고 싶지도 않은 사실이 채 성숙하지 못 한 소년을 고통의 구렁텅이로 던져 넣었다.


파파베르가 죽었다. 죽어버렸다.


"…..ㅇ…..으우…..으ㅎ…흐흐…."


불분명한 소리로 터져나오는 울음에 샹크스는 세운 무릎 사이로 얼굴을 묻었다.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이 바지를 적셨다. 끊을 길 없는 상실감이 소년의 심장을 베어내고,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그리고 그 상실감은 또 하나, 그는 알 수 없었던 사실을 눈 앞에 던져 놓았다.


상대방이 사라지고서야. 그 마음을 고백할 사람이 멀어지고서야 깨닳은 감정. 채 터트리지 못 한 풋내 나는 조각 하나.


샹크스는 파파베르를 사랑한다. 그는 그를 사랑한다.


이제서야. 이제 와서야 마주하게 된 외면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진실에 샹크스는 제 가슴을 스스로 할퀴었다.


"아아아아!!!!! 아아아아악!!!!!!"


높디 높은 망루에 울려 퍼지는 처절한 비명 소리에 다른 이들 역시 슬픔을 삼키며 고개를 떨구었다.


"아아아아아!!!!"


반나절이 넘도록 이어지던 어린 짐승의 피를 토하는 비명 소리는 내외로 몰아친 피로와 스트레스에 당사자가 기절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그렇게 떠나간 이를 위한 소리 없는 장송곡이 오로 잭슨 호를 조용히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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