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리지널 캐릭터 주의.

* 오타 주의.


루즈가 보기에 자신을 골. D. 로저라 소개한 해적은 참 이상한 사람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어딘가 나사가 하나 빠진 사람처럼 보였다. 생긴 건 딱 해적처럼 부리부리하게 생겨서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어제 점심 자신의 동료들과 들이닥친 그는 잠도 한숨 자지 않고 다음 날까지 술을 물처럼 마시며 거짓말 같은 모험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제 무기를 마을 사람들에게 맡겨 두고 고주망태가 되어 실실 웃기도 했다.


유명한 해적이라더니 무기 없이도 싸울 수 있나보지.


어제 낮과 변함없는 그들을 보며 루즈는 한심함에 혀를 찼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생각과는 별개로 로저 해적단의 주변에는 그들의 모험담을 듣기 위해 자리를 차지한 이들이 여럿이었다. 개중에는 선원들 중 마치 여자처럼 아름다운 이에게 말이라도 붙여보려고 하는 이들도 종종 있다.(그러나 그들은 결국 부선장이라는 사람의 매서운 눈에 꼬리를 말고 도망쳤다.)


왁자지껄 세상만사 즐거운 그들을 보고 있자니 루즈는 괜한 짜증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오늘 하루 쌀쌀 맞은 자신의 태도에도 넉살 좋게 대꾸하던 로저를 보았다. 여전히 즐거운 얼굴이다. 그는 그녀의 태도에도 별달리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오히려 마을 사람들이 왜 그러냐고 할 정도로 그녀답지 않게 쌀쌀 맞았지만 해적들은 한 술 더 떠서 짓궂은 얼굴로 부추기기 까지 했다.


뎅- 뎅- 뎅- 벽에 걸려 있던 시계의 추가 좌우로 흔들리며 요란스레 울었다. 퇴근할 시간이다. 두르고 있던 앞치마의 리본을 풀어내며 루즈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트리스테, 전 이만 퇴근 할게요.”
“그래, 그래. 오늘도 수고했어. 내일 봐.”


또 새로운 요리를 하느라 활활 타오르는 불 앞에서 냄비를 뒤적이던 트리스테는 국자를 든 채 손을 흔들었다. 그에 국자에 묻은 소스가 주위로 튀었다. 그것들을 피해가며 루즈는 풀어낸 앞치마를 다른 앞치마들이 있는 걸이에 걸었다. 그리고 주방을 나와 카운터에서 가방을 챙기는 그녀에게 몇몇 손님들의 시선이 몰렸다.


“그러고 보니 퇴근 시간이구만.”
“오늘도 수고했어, 루즈.”
“내일 보자고.”
“네. 다들 술 적당히 드시고 내일 봐.... 요....”


연령대 다양한 손님들의 인사를 하나하나 살갑게 받아주던 루즈의 눈이 로저에게로 향했다. 가게 구석구석 골고루 분포해 앉아있는 이들에게 눈을 맞추며 인사해 주느라 생긴 지극히 우연의 일이었다. 그러나 루즈는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부리부리하고 험악한 눈매에 감싸인 검은 눈동자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서워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루즈를 바라보는 로저의 검은 눈은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채 잠잠하기만 했다. 그러나 그 고요함이 그녀로 하여금 더 눈을 떼지 못 하게 했다.


얼마간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을까.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로저의 눈 꼬리가 천천히 아래로 쳐지면서 폭이 좁아졌다. 그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안녕, 루즈. 내일 봐.”


굵고 낮은 로저의 목소리가 루즈에게 선명히 다가왔다. 수많은 소리들이 어지러운 그 속에서도 그의 목소리만이 그녀에게 닿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네..”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목구멍이 꽉 막힌 듯 겨우 대답을 한 그녀는 트리스테를 빠르게 빠져나왔다.


“무슨 생각이야?”


루즈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활짝 열린 가게 입구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로저에게 레일리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제 어깨에 기대 잠이 든 파파베르를 일정한 박자로 도닥이느라 굉장히 작았다. 잠기운에 파묻혀 허우적대는 파파베르를 깨우고 싶지 않다는 일념이 반영된 행동이 참 배려심이 넘쳤지만, 이 소란 속에서는 부질없기만 했다.


“별 다른 생각은 없는데 말이지.”


입 안에 있는 술을 삼키고 대답을 하는 로저에게서는 특별한 기색을 읽을 수 없었다. 그런 그를 살피며 레일리는 빠르게 신경을 껐다. 내일 모레가 반 백 살인데 어련히 알아서 할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게다가 로저는 대책 없는 행동만 해다는 것과 다르게 날카로운 구석이 있었다. 즉, 마냥 유쾌하고 세상 즐거운 바보는 아니라는 말이다.


로저가 레일리를 신뢰하는 것만큼, 레일리 역시 로저를 신뢰했다. 지나친 걱정은 배려 없는 간섭이고 오지랖일 뿐이다.


“근데 레일리. 너 아들 재우는 아빠 같다.”
“닥쳐.”


잠든 파파베르의 어깨를 끌어 안고 레일리는 로저가 앉은 의자를 걷어찼다.




***


처음 계획과는 다르게 로저 해적단은 5일이 지난 후에도 계속 해서 바테리라에 머물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절하게 주어진 육지에서의 휴식을 조금 더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 그 이유라면 이유였다. 게다가 선장인 로저가 아직 출항을 명령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저기요, 선장님. 그만 좀 보시면 안 돼요?”
“응? 뭐가?”
“뭐가가 아니라!! 하.... 아뇨, 아니에요.”


이제는 습관마냥 올라오려는 짜증을 루즈는 애써 눌러 내렸다. 그녀가 어떤 말을 하던 로저는 봄바람마냥 순하게 넘어가는 터라 시간이 갈 수 록 짜증을 내려는 마음도 점차 사라졌다. 하지만 그를, 정확히는 로저 해적단을 볼 때마다 치고 올라오는 불쾌한 감정이 완벽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진득하게 그녀의 마음 한 구석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정말 싫어!!!!!”


그것이 터지고야 말았다.


로저와 루즈는 마을에서 그녀의 집으로 가는 길목에서 서로 마주보았다. 그들이 있는 곳 아래로는 드넓은 바다가 푸르게 넘실거리고, 바람이 바다 냄새를 실어 옮겼다. 악에 받친 녹빛 눈동자가 물기에 진해졌다.


“정말 싫다고!!! 왜 자꾸 그러는 건데?!! 내가 짜증내는 게 웃겨요?!!! 재밌냐고!! 난 당신들 같은 사람들이 제일 싫어요!!! 대단한 모험을 하는 것처럼 요란이나 떨고, 주변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죠!!!!!”


로저에게 악을 내지르며 루즈는 그제서 알았다. 자신이 로저를, 그의 동료들을 바라보며 원인도 없이 부정적인 감정을 가졌던 이유를. 그녀는 그것을 이제야 똑바로 바라보았다. 어린 날의 목소리가 그녀의 머릿속을 점령하고 옛 기억을 더듬었다.


‘가지 말아요, 엄마, 아빠! 가지 마세요!!!’
‘금방 돌아올게, 루즈. 씩씩하게 있을 수 있지?’
‘싫어, 싫어!!’
‘사랑한단다, 우리 딸.’


바다를 사랑한 포트거스 부부는 제 딸이 10살이 되자 기다렸다는 듯 떠났다. 겁 많던 어린 소녀는 제 부모를 잡았으나, 그들의 뜻을 꺾어들지는 못했다. 멀어지는 선미에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손을 흔들며 돌아오길 기약한 그들은 결국 굳어버린 손가락 하나 딸에게 보내지 못 한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넓디 넓은 바다, 부풀은 꿈을 가지고 세상에 나온 그네들에게는 흔히들 있을 법한 그저 그런 이야기.


루즈는 자신이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저들은 부모님이 아니다. 그러나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곪을 데로 곪은 상처는 조그마한 바늘 하나에 고약한 고름을 질질 흘렸다. 그렇게 그녀는 제가 무슨 말을 하던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 로저에게 피를 토하 듯 퍼부었다.


“허억.... 허억....”


사납게 몰아치는 폭풍우처럼 말을 쏟아낸 루즈는 흙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하얀 치맛자락이 바닥에 쓸려 더러워졌다.


“일단.”


여태 듣기만 하던 로저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드디어 입을 열었다. 루즈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눈가에 고여있던 눈물이 중력의 힘을 받아 도르륵 아래로 흘러내렸다.


로저는 폭언을 들었던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덤덤하기만 했다. 그런 그의 태도에 맥이 빠졌다.


“난 당신이 짜증을 내는 게 웃기다고 생각한 적 없어. 그리고 재밌다고 생각한 적도 없지. 내가 그렇게까지 싫다니 조금 유감이군. 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 같았는데.... 아, 이게 아니지! 그리고 모험이랑 가족은.... 가족은 잘 모르겠군. 난 고아거든.”


주저앉은 루즈의 앞에 로저가 무릎을 굽히고 몸을 숙였다. 그렇게까지 하고 나니 둘의 시선이 비슷한 선 상에 놓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당신의 상처를 함부로 재단할 수도, 할 마음도 없어. 그리고 이해할 마음도 없지. 루즈, 당신 말대로 난 예의라곤 찾아볼 수 도 없는 무식한 해적이거든.”


늘상 검을 잡느라 손끝까지 굳은살이 박혀버린 손바닥으로 그는 조심스럽게 루즈의 뺨을 눈물길을 따라 쓸었다.


“들어봐, 루즈. 위대한 항로의 센트 포플러라는 섬에 가면 사쿠로라는 꽃이 있어. 당신의 머리카락처럼 아름다운 분홍색이지. 그 꽃의 꽃말이 뭔 줄 알아?”


로저가 그들 옆에 피어 있던 꽃 한 송이를 꺾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장식했다. 그리고 그는 바닥을 긁어낸 손을 잡아 올려 입을 맞추었다.


“정신의 아름다움. 지금까지 당당하게 살아온 당신을 존경해, 포트거스. D. 루즈.”


멈추었던 눈물이 다시 흘렀다. 이상한 말만 들어 놓는 눈앞의 해적이 뭐라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가 말한 정신의 아름다움이란 것, 모르겠다. 자신이 끌어안고 있는 것은 그가 말한 강하고 아름다운 정신같은 것이 아닌데. 제가 안고 있는 것은, 10살 배기 어린 날의 포트거스. D. 루즈가 놓지 못하는 것은 그저 지긋지긋하기만 한 미련이라는 상처일 뿐이다. 그러나 로저는 자신이 잡고 있는 것이 아름다운 정신이라 이야기해 준다.


달래기 위해 늘어놓는 감언(甘言)이 아니기에 내뱉어지는 말들은 투박하기만 했다.


루즈의 케케묵은 상처는 지금 당장 로저의 말 몇 마디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 아니었다. 흉터 역시 남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상처는 로저의 말을 거름으로 삼아 새살이 돋고, 언젠가는 그 위에 또 다시 새로운 꽃을 피울 것이다. 그 어떤 것보다 찬란하고 아름다운.




***


일주일. 누군가에게는 길고, 누군가에게는 짧았던 시간이 끝나고 로저 해적단은 드디어 바테리라에서 출항 준비를 모두 끝냈다. 로저는 촌장에게서 무기를 받아 들고 배로 오르는 동료들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돌려 절벽 언저리를 더듬었다.


저기 어딘가 쯤에 루즈의 집이 있다. 그녀에게 어울리는, 그리고 그녀를 닮은 따뜻하고 소담한 집.


로저는 루즈와 나누었던 마지막 대화를 떠올렸다.


‘난 당신의 가족이 될 수 없어, 루즈.’
‘떠날 거라 서요?’
‘아니, 죽을 거라서.’
‘.....’
‘난 죽어, 루즈. 곧.’


그는 아마 평생, 죽는 그 순간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달빛을 받아 창백하게 빛나던 그 처연한 아름다움을.


“어이, 로저! 이제 출항.....”
“로저!!!!!!!”


멀리서 꽃이 날아들었다. 바람결을 따라 나붓기는 머리카락과 새하얀 치마 자락이 로저의 눈길을 사로잡고, 심장을 옥죄었다. 이틀 전 그가 손수 꺾어 꽂아 주었던 꽃은 용케 떨어지지 않고 그녀의 귓가를 장식하고 있었다. 품 안으로 쏟아져 든 루즈를 놀란 얼굴을 한 로저가 단단히 지탱했다.


“루.... 즈....”


마을을 통해서 온 것이 아닌지 전혀 다른 방향에서 달려온 루즈는 쉬지 않고 뛰어온 듯, 로저의 목에 매달려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루즈... 왜.... 여기....”
“닥쳐요. 내가 먼저 말할 테니까.”


새하얀 손으로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입을 막은 루즈는 제 귓가에 있던 꽃을 빼어 로저의 귓가로 옮겼다. 다섯 개의 붉은 잎으로 이루어진 그것은 로저의 험악한 얼굴에 아주 훌륭할 정도로 어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루즈는 아주 만족스러운 얼굴로 웃으며 그를 보았다.


“그거 알아요? 그건 아모라는 꽃이에요. 바테리라에서는 아모를 사랑하는 연인에게 선물 하죠. 꽃말이 ‘사랑의 고백’이거든요.”


이제 입을 가로 막던 새하얀 손을 없다. 그러나 로저는 입을 열 수 없었다. 항상 바라만 보던 붉은 입술이 그에게 닿아 왔기 때문이다. 깃털과도 같이 살며시 가까워졌던 입술은 약간의 간격을 두고 다시금 멀어졌다.


“그러니까 당신은 그제 나에게 사랑 고백을 한 거라고요. 알아들으시겠어요, 아저씨?”
“루즈, 그만.....”


다시 입술이 맞부딪혀 왔다. 이번에는 조금 더 오래였다.


“아니라고 하지 말아요. 나는 예스(YES)니까. 죽는다고도 하지 말아요. 신경 안 쓰니까. 돌아오지 않는다고 겁 줘도 상관없어요. 이제 기다리는 거 잘 하거든요. 당신의 마지막이 내 옆이 아니라도 괜찮아요. 당신의 삶이 끝날 때, 아주 잠시 날 떠올리다면 난 그걸로 족해요. 그거면 충분해요.”


잘게 떨리는 검은 눈동자 속에서 여인이 아름답게 미소 짓는다.


“안녕, 내 사랑. 그리울 거예요.”


로저는 떨리는 팔로 결국엔 그녀를 품에 안았다.


바보 같은 여자.
미련한 여자.
그리고.


그리고 한 없이 강하고 아름다운 내 심장아.


첫 눈에 들었던 사랑은 결국 그의 심장에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그 사랑을 위하여 로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는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마음을 담아 루즈의 이마에 입술을 내렸다. 그녀의 이마에 닿은 입술이 불처럼 뜨거웠다. 그 입맞춤을 받아내는 루즈의 뺨 위로 투명한 눈물이 한 방을 길게 길을 만들었다.


제 마음을 입 밖으로 내지 못 하는 남자처럼, 여자 역시 더 이상 입을 열 수 없었다.




***


그거 알아요, 로저? 아모는 바테리라에서 사랑을 고백할 때 선물해요. 근데 아모의 또 다른 꽃말이 뭔 줄 아나요?


기다림. 기다림이에요.

ㅇㅇ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