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리지널 캐릭터 주의.

* 오타 주의.


간밤의 폭풍우를 뚫고 그들은 사우스 블루를 항해하고 있었다.


“선장, 우리 물자 다시 채워야 할 거 같은데? 거의 다 떨어졌어.”
“얼마 정도 남았는데?”
“일주일 치 정도?”


화물칸에서 올라온 시걸의 말에 로저가 스툴을 보았다. 그 눈길에 스툴은 바닥에 해도를 펼치고 날카로운 눈으로 그것을 살폈다. 수많은 섬들이 그려진 해도를 따라 눈이 도르륵도르륵 움직였다.


“충분해. 이 속도로 3일 정도만 더 가면 섬이 있어. 거기서 물자를 채우자. 그리고 난 다음 위대한 항로로 돌아가는 거지. 어때?”
“좋아.”


로저가 고개를 끄덕였다.


“섬 이름은?”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레일리가 묻자, 해도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던 스톨이 여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바테리라. 바테리라 섬이네.”




***


사우스 블루의 작은 섬 바테리라의 아침은 평소와 같다. 어슴푸레하게 해가 밝아오면 부지런한 이들은 일찌감치 자리를 털고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그것은 포트거스. D. 루즈, 그녀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일이다. 아니, 오히려 일가친척 하나 없는 그녀가 다른 집 사람들 보다 더 바지런을 떨곤 했다. 벌써 10년 째 홀로 생활하는 그녀로썬 혼자서 가만히 있어봐야 궁상만 는다는 것을 일찍이 깨우쳤기 때문이다.


바다가 훤히 보이는 절벽 위, 붉은 지붕이 인상적인 통나무집에 홀로 생활을 꾸리고 사는 루즈는 오전에 해야 할 일을 빠르게 끝내고 출근을 위해 마을로 향하는 길을 걸었다. 그녀의 집은 마을과 다소 떨어져 있는 터라 그녀는 출근 때마다 10분 정도 걸려서 이 길을 걸어야만 했다. 마을에 들어서서 그녀는 여러 가게들이 즐비한 상점가로 몸을 돌렸다. 그녀의 직장은 바테리라 섬의 유일한 술집인 트리스테. 루즈는 이곳의 카운터 담당 겸 웨이터리스트였다.


“어머, 벌써 문 여니? 평소보다 더 빠르구나.”
“네, 조금 일찍 일어나서요. 좋은 아침이에요, 잠피 씨.”
“그래, 좋은 아침.”


옆에 붙은 과일 가게 주인과 인사를 하며 루즈는 가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 바로 창고로 들어가 한 쪽에 가지런히 정리해 둔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나왔다. 그것들을 이용해 가게 바닥을 한참 쓸고 있으면, 트리스테의 주인이자 주방장인 트리스테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다섯 살 난 아들을 가진 그는 무뚝뚝한 인상과 다르게 정이 많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여- 오늘도 부지런하구나, 루즈.”
“좋은 아침이에요, 트리스테. 이게 다 사장님에게 사랑 받기 위한 직원의 처절한 몸부림이죠.”
“하하하핫!!!! 그래 내가 가장 아끼는 직원 포트거스. D. 루즈 양 오늘 하루도 힘내 봅시다!”
“옙, 사장님!”


트리스테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루즈는 청소를 마무리했다.


트리스테가 섬의 유일한 술집이라고 해봤자 원체 소식도 느린 작은 섬마을이라 오는 손님들은 항상 정해져 있었다. 그녀의 부모 때부터 얼굴을 맞대고 알아왔던 사람들. 그들 사이에서 그녀는 식사와 음료를 나르고, 계산하고, 웃고, 이야기한다. 평소와 다른 것 없는 그런 평범한 점심.


“항구에 해적선이 나타났어!”


그렇게 평화롭던 평일 점심은 트리스테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고 들어온 청년이 외친 말에 산산조각 났다. 사람들의 얼굴이 두려움에 급격하게 침식되었다. 술을 마시던 남자들은 자리에서 빠르게 일어나 무기를 찾기 시작했다. 얼큰하게 오른 술기운은 청년이 말을 뱉음과 동시에 휘발되었다. 한숨 돌릴 겸 벽에 붙어 손님과 이야기를 하던 트리스테 역시 긴장감에 딱딱해진 얼굴로 주방으로 뛰어 들어가 가장 크고 날카로운 식칼을 들고 뛰쳐나갔다. 순식간에 폭풍 전야 같은 분위기가 마을을 휩쓸었다.


그러한 내부 상황을 알 리 없는 로저 해적단은 배를 바테리라의 항구에 부드럽게 정박시켰다. 아무리 바다를 사랑하는 바다 사나이들이라고 해도 인간이라면 육지도 밟아 주어야 하는 법. 한동안 제대로 된 육지에 정착한 적 없던 로저 해적단의 눈에는 과장을 조금 보태서 바테리라가 마치 낙원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러한 그들의 설렘은 얼마가지 못 했다. 항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각 종 무기들을 손에 쥐고 긴장감과 두려움이 섞인 얼굴을 한 마을 남성들을 본 탓이다.


그들은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모거니아를 본 것처럼 로저 해적단을 경계했다.


“이런. 우리 오해 받는 거 같은데.”
“아무리 봐도 제대로 된 해적 한 번 본 적 없는 깡촌인 거 같은데. 잘 구슬려야지 어쩌겠어. 우리 이 섬 아니면 리버스 마운틴 넘어야 되서 다음 섬까지 최소 일주일은 더 가야 돼.”


부쿠스와 스톨의 말을 들으며 로저는 뱃머리로 뛰어 올라 마을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자신의 빈 손을 들었다.


“난 로저 해적단의 선장 골. D. 로저! 우리는 피스 메인이오!!! 항해에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배를 정박한 것일 뿐 다른 이유는 없소! 약탈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믿지 못 하겠다면 우리가 섬에 머무는 동안 당신들이 무기를 맡고 있어도 좋소!!!!”


로저의 말에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그러나 여전히 손에 든 무기를 치켜세우고 있는 것이 그들이 아직 로저 해적단을 경계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40명이 조금 넘는 그들 중 나이가 지긋한 노인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당신네들이 무기를 넘겨주는 척하고 우리를 공격할 지 누가 아나.”
“아니, 약탈을 할 거였으면 앳저녁에 털어 먹었겠지. 영감쟁이, 거 참 의심 많네.”


가반이 투덜거렸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로저는 이가 들어 나도록 호기롭게 웃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한 점의 거짓없이 당당하고 꿋꿋했다.


“골. D. 로저. 내 이름과 명예를 걸지!!!!”


마침내 그들은 바테리라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약속대로 지니고 있던 무기 모두를 미련 없이 마을 사람들에게 맡기고 선원들은 가장 먼저 주점을 찾았다. 바테리라에 도달하기 이틀 전에 술이 똑 떨어진 탓에 모두가 의도치 않은 금주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항해의 첫 기쁨은 술이라고 생각하며 굳게 믿고 있는 그들로써는 끔찍할 정도로 긴 이틀이었다. 선장부터 견습선원 할 것 없이 하나같이 훌륭한 알콜 중독자인 그들은 그 짧은 사이 트리스테와 말을 트고 발걸음도 가볍게 마을의 유일한 주점으로 향했다.




***


바테리라는 해군 영향력이 그리 크게 작용하지 않은 곳이었다. 원체 작은 섬인데다 위대한 항로로 향하는데 꼭 거쳐 갈 필요도 없는 시골에 불과한 마을이었기에 해적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 루즈가 태어나 21살이 되기까지 단 한 번도 해적의 공격을 받은 적이 없으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거의 없다고 봐야했다. 그러나 뒤늦게나마 주변에서 알음알음 들려오는 풍문들은 해적들이 어디 어디를 공격하고 약탈했다 하는 이야기들뿐이니, 자체 방어력이 0에 수렴하는 바테리라 주민들로써는 마냥 안심을 할 수 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 여보라며 해적기를 떡 하니 건 배가 항구에 나타났으니.


루즈는 입속말을 하며 카운터에 앉아 사람들이 모두 나가 휑하니 비어버린 가게를 둘러보았다.


정말 해적들이 약탈을 하면 어쩌지.


그 순간 요란스러운 종소리와 함께 가게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불과 15분 전에 살벌한 얼굴을 한 채 식칼을 들고 나간 트리스테였다. 보기만 해도 겁나는 칼을 여전히 들고 있는 것과 다르게 그의 얼굴은 어느새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루즈, 손님이야.”


그런 트리스테의 뒤로 생판 처음 보는 남자들이 따라 들어왔다. 하나 같이 흉터를 달고 있는 것이 아까 말한 해적들이 이들을 이라는 것을 그녀는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아니, 근데 저 해적들이 왜 여기로 들어온데?


루즈의 당황스러움과 달리 로저 해적단은 지금 즐겁기가 짝이 없었다. 이틀 만의 술이었다. 그들이 즐거워 할 이유로는 충분했다. 제 몸에서 떨어져 나간 무기들은 이제 안중에도 없었다.


“자자. 아무 데나 앉으라고. 술이랑 음식은 얼른 꺼내오지.”
“최대한 많이 부탁해.”
“맡겨 둬. 루즈, 술 좀 부탁해.”
“....”
“루즈?”
“아, 아! 네-!”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따라가지 못 하고 공황상태에 빠져 있던 그녀는 트리스테의 말에 빠르게 정신을 수습하고 술 창고로 몸을 돌렸다. 그러면서 그녀는 곧 로저 해적단에게 신경을 껐다. 항구로 달려갔던 촌장과 마을 남자들이 어련히 알아서 했을까 싶은 생각 때문이었다.


술 창고로 걸어가는 그녀의 뒤로 결 좋은 연분홍색의 긴 머리카락이 꼬리처럼 잔상을 남겼다. 그리고 로저는 가게로 들어온 뒤로 그것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트리스테의 손은 무척이나 빨랐다. 주방으로 들어간 지 40분도 안 되어 완성된 요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인원이 인원인지라 거대한 그릇에 산처럼 쌓여져 나오는 음식들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그러나 그 많은 음식들 중에 파파베르가 먹을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었다.


“난 잠시 나갔다 온다.”
“아아. 다녀와.”


꿔다 놓은 보리 자루마냥 덩그러니 앉아 있는 파파베르를 레일리가 일으켰다. 그는 아까 오던 길에 봤던 꽃집에 다녀올 생각이었다.


“부선장.”


늘 그렇듯 파파베르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자리를 뜨려는 그를 시걸이 불러 세웠다. 그리고 무엇인가 검은 물체가 레일리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공격에 의미를 두고 던지 것이 아니라 그리 빠르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묵직하게 날아간 그것을 레일리는 쉽게 잡아챘다. 안정적으로 레일리의 손에 안착한 것은 아직 따지 않은 시원한 럼 한 병이었다.


“가는 길에 한 모금 하라고.”
“아아. 고맙다.”


그것을 웃으며 받은 레일리는 바로 뚜껑을 따 마시며 파파베르와 함께 트리스테를 나왔다.


바테리라는 작지만 아름다운 섬이었다. 온화한 기후로 인해 곳곳에 다양한 꽃들이 피어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했다. 어디로 고개를 돌리든 어지러운 정도로 활짝 핀 꽃들이 파파베르의 식욕을 돋우었다. 그는 잠시 꽃집에 갈 것 없이 저것들을 뜯어서 먹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세 달이 넘도록 파파베르와 살을 부대끼며 생활한 레일리는 이제 거의 완벽히 그를 파악했다. 파파베르는 특이한 생각과 행동을 종종하곤 했다. 그리고 그 종종이 오늘은 지금이었다. 속눈썹을 팔랑이며 길에 핀 꽃을 물끄러미 응시하는 파파베르를 내려다 보던 레일리는 어깨에 얹은 손을 들어 폭신한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었다.


“으아아-”
“안 돼.”


단호한 그 말에 파파베르가 그를 살짝 올려다봤다. 그러나 기대와 다르게 레일리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그는 파파베르의 정수리에서 손을 떼지 않고 한 번 더 머리를 헤집었다. 그리고 겨울나무 가지 같은 손을 꼭 잡고 다시 당부했다.


“안 된다고 했다. 꽃집 금방이다.”


레일리가 저렇게 까지 말하면 파파베르는 이길 수 없다. 결국 체념한 파파베르는 흐느적흐느적 고개를 끄덕이며 레일리가 이끄는 방향으로 따라갔다. 천천히 보폭을 맞춰 걷는 둘의 뒷모습에서 햇볕에 말린 이불처럼 포근한 일상의 향기가 스몄다.

ㅇㅇ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