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리지널 캐릭터 주의.

* 오타 주의.


바다에서 건져낸 동강동강 열매는 하룻밤 사이에 버기가 꿀꺽해버렸다. 그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그랬다. 맥주병이 되어버린 버기는 상황에 일조한, 아니 가장 큰 원인인 샹크스를 죽일 일념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참 안타깝게도 샹크스는 살기등등한 버기의 공세를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눈치였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버기, 아직도 화난 거야?”
“저리 꺼져!!”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버기의 기세는 여전히 흉흉하기만 했다. 그럼에도 샹크스는 특유의 넉살로 버기에게 이리저리 말을 붙였다. 그런 둘을 보며 파파베르는 습관처럼 웃었다. 다가가자니 버기의 히스테리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그는 홀로 한 쪽 구석에 앉아있는 부쿠스의 옆에 붙었다.


부쿠스는 로저 해적단의 음악가로 전투 때가 아닌 이상 항상 품에 기타를 끼고 살았다. 선원들 중에서 비교적(말 그대로 비교적) 조용하고 유한 데다 나이까지 젊은 축이라 파파베르와 곧 잘 함께 앉아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리고 그건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기타 현을 튕기는 부쿠스는 느긋하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파파베르는 옆에 앉아 그것을 조용히 감상했다. 낮고 잔잔한 목소리가 마음을 넉넉하게 했다. 눈앞에 보이는 (한 쪽만) 살기등등한 건너편 사생결단의 상황과 대비되어 이쪽은 평화롭기만 헀다.


“전방에 해적선 한 척! 어? 흰 수염 놈들인데?”
“그 놈들이 지금 왜 여기에 있어!”
“낸들 아냐!!”


망루에 올라 주변을 살피던 선원 하나가 외쳤다. 갑작스럽게 끊긴 부쿠스의 기타 소리가 애매한 여운을 남겼다. 망루 위의 선원의 말대로 육안으로 살필 수 있는 곳쯤에서 뱃머리가 새하얀 거대한 배 한 척이 순풍을 타고 그들이 있는 곳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왜, 무슨 일인데?”
“선장, 저기 흰 수염 놈들인데.”


낮잠을 자고 있었는지 로저는 배를 득득 긁으며 입이 찢어져라 거한 하품을 하고 걸어 나왔다. 그러는 동안에도 흰 수염 해적단의 배는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원근법에 따라 부지런히 크기를 키워가고 있는 배를 보며 로저는 뒷머리를 거칠게 헤집었다. 새둥지마냥 이리저리 뻗힌 머리가 더욱 현란해졌다.


“흐... 으아아암! 누구? 흰 수염?”
“저기.”
“오-! 정말 흰 수염이구만!”
“저 놈들 수스 섬 쪽에 있다고 들었는데.”
“아무렴 어때! 어-이!! 흰 수염!”


잠이 모두 달아난 얼굴을 하고 로저는 난간으로 다가가 팔을 흔들며 크게 외쳤다. 간만에 본 친구를 대하는 양 정겨운 모습이었다.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넉살 좋은 선장의 모습에 로저 해적단은 그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오로 잭슨 호와 마찬가지로 흰 수염 해적단의 배에도 선원들이 난간에 가까이 서서 로저 해적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도 그리 날을 세우는 것 같진 않았다. 오히려 로저 해적단처럼 익숙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가까워진 배는 오로 잭슨 호보다 적어도 세 배는 컸다. 억 소리가 나오도록 큰 배에 승선하고 있는 이들 중 유난스레 덩치가 큰 중년의 남성이 서늘한 기세로 로저를 응시했다. 그 기세등등한 눈빛에도 로저는 여전히 웃는 낯을 한 채 손을 흔들었다.


“여어- 흰 수염, 오랜만이구만.”
“네 놈과 인사를 나눌 정도로 우리가 친했던가.”
“이거 우리 빡빡하게 굴지 말자고. 난 이미 충분히 시달리고 있단 말이다.”


그 말에 흰 수염이 눈으로 레일리와 가반을 훑더니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로저가 지칭하는 빡빡하게 구는 이들이 저들임을 짐작한 둘은 눈빛으로 그의 뒷통수를 뚫어버리려는 듯 살벌하게 노려봤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우스운 행동이 잔잔하게 남아 있던 나머지 긴장감마저 날려버렸다.


“이것도 인연인데 술이나 한 잔 어때?”
“나쁘지 않지.”
“크하하핫!!!! 역시 흰 수염!! 시원시원하구만!!!! 술은 우리가 챙겨가지! 좋은 게 있거든!!”


선장들이 이렇게 마음이 맞으니 반대가 있을 리가. 게다가 다른 것도 아니고 술판이다. 술 좋고, 흥 많은 천상 해적인 그들이 연회를 마다 할 리 만무했다. 흰 수염 해적단 배에서 오로 잭슨 호로 나무판자가 걸쳐졌다. 아래로는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며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부실하기만 한 임시 다리였지만 다들 잘만 건넜다. 그러나 행여 발을 잘 못 디딜까 파파베르는 레일리가 허리를 안아 들고 건넜다. 흰 수염 해적단의 눈이 로저 해적단 부선장에게 안겨 배를 건너온 파파베르에게 꽂혔다.


가슴이 판판한 것을 보면 영락없는 사내놈인데 지나치게 아름다운데다 분위기가 묘했다. 명왕과도, 혼자서도.


“받아라.”
“이건 뭡니까?”
“꽃이다. 모비딕에는 없을 것 같아서 말이지.”


레일리의 손바닥 보다 조금 더 큰 봉투를 받아든 파파베르의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이제는 익숙한 배려에 파파베르는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고맙습니다.”


파파베르의 미소에 면역이 없는 흰 수염 해적단 선원들이 몸을 베베 꼬았다.


남자잖아! 왜 저렇게 이쁜 건데?!


결이 좋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함께 웃어주던 레일리의 검은 눈동자가 좌중을 훑으며 서늘하게 빛났다. 대부분의 이들은 레일리의 눈을 피해 딴청을 부렸고, 그렇지 않을 만한 배짱을 가진 나머지는 어이가 없다는 태도를 한껏 드러냈다. 그러나 그들이 어떠하든 레일리는 만족한 얼굴을 하고 손을 내려 파파베르의 뺨을 쓰다듬고 얼굴을 당겨 귓가의 당부의 말을 쏟아냈다.


흰 수염 해적단에서 허튼 짓을 하는 놈이 과연 있을까 싶지만 만에 하나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게다가 파파베르를 보며 정신을 못 차리는 놈들을 보니 그 걱정이 더욱 가중되었다.


“다른 놈들 옆에 잘 붙어서 놀아라.”


레일리가 이야기하는‘다른 놈들’이 로저 해적단을 의미하는 것을 잘 아는 파파베르는 성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파파베르, 여기!”  


마침 흰 수염 해적단 선원 둘과 함께 앉아 있던 샹크스가 손을 흔들었다. 그에 레일리는 파파베르의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고 벌써 한 잔 씩 걸친 로저와 흰 수염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파파베르는 저를 부르는 샹크스에게로 향했다.


“어이, 레일리. 저 꼬마는 누구냐? 네 놈 답지 않게 끼고 도는구만, 그래.”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질문이 치고 들어왔다. 레일리는 대답을 하는 대신 제 얼굴보다 넓은 자에 술을 가득 채우고 한 번에 들이켰다. 파파베르에게 순순히 잘 놀라며 놓아준 것과 달리 눈은 계속해서 그를 쫒았다. 레일리가 좀처럼 대답할 생각을 않자 술을 물처럼 들이키던 로저가 여상하게 입을 열었다.


“애인이야, 애인. 아니지. 짝사랑이라고 해야 하나. 파파베르도 영 마음이 없는 건 아닌 눈치다만.”


순간 세 사람 사이로 미묘한 침묵이 흘렀다. 흰 수염의 눈이 묵묵히 술잔을 기울이는 레일리와 대답을 한 로저, 그리고 저 멀리 샹크스와 버기 사이에서 웃고 있는 파파베르를 차례로 훑었다. 말을 뱉은 놈이나, 당사자인 놈이나 평온하기만 하니 이상함을 느끼고 있는 저가 유난스러운 것인가 흰 수염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키는 그럭저럭 컸다만 몸피가 얇고, 솜털이 보송보송한 것이 뜯어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앳띠었다.


“저 녀석...... 삿치랑 마르코보다 어려 보인다만....?”
“아아. 올해 열일곱이야! 예쁘지? 일주일 전에 낚시를 했는데 말이야 녀석이 악마의 열매를.....”


로저가 무슨 말을 지껄이던 맨 처음 나왔던 열일곱이라는 숫자가 흰 수염의 뇌리에 콱 박혔다.


“.... 이 미친놈.”


저도 모르게 침음이 흘러나왔다.


열일곱. 마르코랑 삿치가 올해 몇이더라. 열여덟이었나. 저 녀석이 열일곱. 레일리 녀석이 나보다 네 살이 많으니까. 그러니까 나이차가......


“네 놈 양심은 어디 갔냐.”


의식의 흐름 속에서 서른다섯이라는 겁나는 나이 차이를 도출한 흰 수염이 그 언젠가의 로저 해적단 선원들처럼 레일리를 보았다. 그러나 레일리는 잔으로 입가를 가리며 바람 빠진 웃음을 흘렸다.


“양심 다 챙겨가면서 어떻게 해적질을 하나.”
“그래, 그래. 자자, 마시자고!!”
“아니....”


그래도 이건 아니지, 이 또라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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