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리지널 캐릭터 주의.

* 오타 주의.


항해사인 스톨의 말대로 로저 해적단은 오전 중에 베르 섬에 도착했다. 현재 있는 식량과 생필품으로도 한 동안의 항해에는 별 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그들은 파파베르를 위해 번거로움을 기꺼이 감수했다.


막연히 결론 내릴 수 없지만 굳이 정의하자면 그들은 선인에 가깝지 않을까. 적어도 파파베르에게 그들은 선인이었다. 그것이 비록 레일리 때문에 비롯되었다 할 지라도.


베르는 특별한 말썽이 없는 평화로운 섬 중 하나였기에 어제 다 하지 못 한 서류 정리를 해야 하는 레일리 대신 샹크스가 파파베르와 함께 했다. 또 다른 견습 선원인 버기는 어제 있었던 레튬과의 전투로 인해 꼼짝없이 배 안에 있어야 했기에 둘 만이 배에서 내렸다.


“가자, 파파베르.”
“네.”


셔츠 하나도 제대로 없는 파파베르는 임시방편으로 레일리의 옷을 입고 있었다. 빌려 입은 옷은 길이는 어찌 어찌 단을 접어 입었으나, 품이 턱도 없이 컸다. 때문에 그들은 파파베르의 옷을 사기 위해 상점가로 가는 길이었다.


고향 섬에서 나와 노예 생활 밖에 해보지 못 한 파파베르는 엄마를 따라다니는 아이처럼 저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샹크스 뒤를 쫒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샹크스가 그런 파파베르의 행동에 답답해하고 짜증을 내는 대신 넉살 좋게 웃으며 손을 잡아주는 사려 깊은 소년이라는 점이었다.


“그럼 파파베르는 이렇게 돌아다닌 적이 한 번 도 없어?”


화폐 단위를 아는 것만으로도 그에게는 대단한 일이었다. 그 정도로 파파베르는 외부와 차단되어 살아왔다. 그러나 그런 것을 샹크스가 알리 만무했다.


말없이 지은 애매한 미소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그는 파파베르의 손을 단단히 잡았다. 저보다 나이만 많은 이 맹한 남자를 혹여나 잃어버릴까 하는 노파심이 샹크스가 하는 행동의 가장 큰 이유였다. 파파베르는 제 손바닥에 부딪히는 굳은살을 느끼며 새삼 저보다 작은 이 아이가 해적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둘은 딱히 헤매는 것 없이 옷가게를 찾았다. 청아한 종소리와 함께 둘은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점원의 인사를 들으며 그들은 바로 옷을 골랐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남자 둘이 하는 쇼핑이라 사실 고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싸고, 질 좋고, 깔끔하면 만사 오케이였다. 여러 옷들을 늘어놓으며 속살거리는 점원의 말을 흘려들으며 샹크스는 파파베르의 사이즈에 얼추 맞추어 상의와 하의 몇 개를 골랐다. 속전속결로 값까지 치루고 나니 그들은 들어온 지 10분도 안 되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안녕히 가시라는 점원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샹크스와 파파베르는 상점을 나섰다. 각 자의 손에는 쇼핑백이 하나 씩 들려 있었는데, 샹크스의 손에 있는 것이 조금 더 부피가 컸다. 그로써는 자신이 한 대 만 퍽- 쳐도 또각- 하고 부러질 것 같은 파파베르가 영 불안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파파베르는 대신 계산을 한 데다 짐까지 자처해서 들려는 샹크스에게 미안해서 어쩔 줄 몰랐다. 서로 짐을 들겠다 안절부절 못 하던 둘은 결국 각 자 하나 씩 드는 것으로 타협을 본 것이 지금에 상황에 이르렀다.


“파파베르, 바로 돌아갈까?”


말과 다르게 샹크스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줄줄 흘렀다. 그것은 파파베르도 마찬가지였다. 감시 없이 스스로의 의지로 하는 외출이 거진 3년 만이었다.


“우리.... 조금만 더 구경하다 갈까?”


샹크스는 파파베르의 얼굴 위로 저와 같은 아쉬움이 번지는 것을 읽었는지 손가락으로 볼을 긁으며 슬쩍 운을 땠다.


조금은 괜찮지 않을까.


망설이던 파파베르는 결심이 선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자!”


작지만 거친 손이 다시 다가왔다. 그 위로 길쭉하고 마른 손이 얹어졌다. 행여나 잃어버릴까 서로 손가락을 꼭 얽고 들뜬 발걸음을 옮겼다.


베르 섬은 그리 큰 섬이 아니었다. 하지만 볼거리는 충분했다. 파파베르와 샹크스는 각 자 쇼핑백을 달랑거리며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어디서 그런 체력이 솟았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길거리에 늘어진 좌판을 구경하고, 샹크스의 강력한 주장으로 무기점 안에 고개만 넣어 날이 퍼렇게 선 검도 보았다. 그 외에도 몇 곳을 더 돌아다닌 후, 아까 옷을 사고 남은 돈으로 그들은 마실 것을 샀다. 돈을 쥐어 준 레일리가 다 써도 상관없다고 했기에 걱정은 없었다.


광장 분수대 옆 벤치에 앉아 파파베르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샹크스는 조금 더 돌아다니고 싶은 눈치였으나 곧 미련 없이 파파베르 옆에 엉덩이를 붙였다.


방금 전만 해도 서로 손을 잡고 스스럼없이 다녔는데 막상 자리에 앉으니 할 말이 없었다. 소란스러운 주변 거리와 투명한 벽으로 분리가 된 듯, 둘의 근처는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항상 활동적이고 시끄러운 환경에서 살아온 샹크스로써는 목이 바짝바짝 타는 것 같았다.


차라리 전투를 하는 게 훨씬 편하겠다!


그는 시선을 종이컵에 박은 채로 빨대를 쪽쪽 빨았다. 상큼한 키위 주스가 입 안을 가득 채웠다.


“샹크스.”
“푸웃-!!!”
“으아! 괜찮아요?!”
“고, 괜.... 쿨럭, 쿨럭!!.... 찮아... 큽..!”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놀라 사례가 들린 샹크스는 가까스로 기침을 멈추며 손사래를 쳤다. 나름대로 어색한 분위기를 타개해 보고자 입을 열었던 파파베르는 그가 이렇게 까지 격렬한 반응을 보일 줄 몰랐기에 같이 놀랐다.


“ㅁ, 미안합니다. 이렇게 놀랄 줄 몰랐어요.”


입가에 묻은 주스를 닦아내며 아직 간간히 잔기침을 하는 샹크스의 등을 파파베르가 아프지 않게 두들겼다.


“아이고... 아, 이제 진짜 괜찮아. 근데 왜?”
“아, 그냥 샹크스는 언제 바다에 나왔나 궁금해서요.”
“나? 난 열 두 살에 승선했어. 선장이랑 레일리 씨한테 싹싹 빌었지! 버기는 나보다 한 달 먼저 승선했고.”
“버기라면 그 빨간 코.”


마치 잘 익은 자두 같았던 인상적인 코를 떠올리며 파파베르가 대꾸하자 샹크스는 배를 잡고 웃었다.


“맞아, 그 빨간 코! 근데 그 말 버기 앞에서는 안 하는 게 좋을 걸.”  


소년의 얼굴 위로 개구지고 유쾌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 나이 대에 어울리는 자신만만하고 싱그러운 웃음이었다.


“조심해야겠네요.”
“나랑 있을 때는 괜찮아. 그건 그렇고 오늘 내 마음대로 끌고 다녔는데 힘들지 않았어?"


당치도 않는 말이었다. 하늘에 맹세코 오늘만큼 신기하고 즐거운 하루는 처음이었다.


“전혀요! 정말, 정말 고마워요. 오늘만큼 즐거운 날은 처음이에요.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샹크스.”


꽃이 개화하듯, 피어오른 미소에 샹크스는 넋을 놓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눈꼬리가 내려오고, 입이 호선을 그린다. 콧대에 살짝 잡힌 주름은 그가 저보다 연상이라는 사실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처음 봤을 때도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눈동자에 반짝반짝 빛이 서렸다. 마치 보석 같았다.


“샹크스?”
“....”
“샹크스.”
“...어, 응? 왜?”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아, 아니, 아니. 이제 그만 갈까?”


파파베르는 샹크스가 애써 말을 돌린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지만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없이 쏘다니느라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기 때문이다. 둘은 이제 익숙하게 서로의 손을 잡았다.


걸어온 길을 되짚어 20분 정도 걷자 오로 잭슨 호가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 파파베르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 레일리가 서있었다.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그들은 그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저들을 보고 있음을 알았다. 이내 레일리의 시선이 얽힌 두 손에 닿았다.


“조금.... 늦었군.”
“죄송해요. 화나셨어요?”


얽혀있던 손이 자연스럽게 풀렸다. 자유로워 진 손으로 파파베르는 수염이 까슬하게 올라온 레일리의 뺨을 쓰다듬었다.


“아니.”


레일리는 제 뺨을 쓸어내리는 손을 잡아 입을 맞추고, 샹크스와 파파베르가 들었던 쇼핑백 모두 받아 한 손에 들었다. 파파베르를 추슬러 품에 안은 채 배로 오르려던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았다. 레일리와 그 품에 있는 파파베르가 멀어지는 동안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샹크스의 눈이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쌍의 눈동자가 허공에서 부딪혔다. 찰나에 오가던 눈빛은 레일리가 다시 앞을 바라면서 흩어졌다.


“얼른 타라. 바로 출항이다.”


그제야 둘을 따라 샹크스도 배에 올랐다. 그는 한기가 서린 제 손을 쥐었다 폈다. 아까 본 파파베르의 웃는 얼굴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레일리를 보자마자 미련 없이 멀어지는 뒷모습에 왜 아쉬움과 패배감이 들었는지 아직 어린 샹크스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느꼈던 감촉을 잊지 않기 위해 그저 다시 한 번 더 손을 쥐었다 폈다. 그 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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