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리지널 캐릭터 주의.

* 오타 주의.


오로 잭슨 호는 소란스러웠다. 언제나 소란스러웠지만 오늘은 특히 더 그랬다.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쏠렸다. 그들은 부선장이 전리품이라고 데려온 이를 찬찬히 살폈다.


우유에 커피를 섞은 듯 조금은 짙은 색의 피부와 눈썹까지 덮은 곱슬거리는 흑발, 갸름한 얼굴이 가장 먼저 시선을 끌었다. 허나 그들이 오랫동안 눈길을 주는 것은 푸른빛도 연둣빛도 아닌 오묘한 색의 눈동자였다. 그것을 감싼 눈매는 다소 날카로운 편이었으나 눈을 느른하게 뜨고 있는 터라 그리 부각되지는 않았다. 대신 길고 촘촘한 속눈썹이 솜털이 보송한 얼굴 위로 음영을 드리워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유려한 콧대를 따라 밑에 자리한, 위가 조금 더 도톰한 입술이 작게 벌어졌다. 그러자 선원 몇몇이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물론, 그들은 그러기가 무섭게 사나운 레일리의 기세를 위한 먹이가 되어야만 했다.


“파파베르입니다.”


파파베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침대 위를 벗어날 일도 없는 잠자리 노예일 뿐인 저가 왜 이곳에서 자기소개를 하고 있나. 그러나 그러한 의문은 저만이 느끼고 있는 듯, 해적단 한 명 한 명이 제 소개를 했다. 레일리의 옆에 앉아 선원들과 통성명을 하던 파파베르는 다른 이들과 다른 태도로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크로커스의 눈길에 괜한 불안감을 느꼈다.


“왜 그러지, 크로커스?”


그 시선은 레일리 또한 느끼고 있었던 터라 파파베르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물었다. 크로커스는 기묘한 눈을 하고 있었다. 소수의 다른 선원들처럼 파파베르의 미모에 홀린 눈은 아니었다. 레일리는 곧 그가 획기적인 의학 논문을 봤을 때와 비슷한 눈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라미아인가?”
“그게 뭐지?”


크로커스의 말에 궁금한 것을 참지 못 하는 로저가 대번에 끼어들었다. 생소한 단어에 대부분의 선원들 역시 의문기가 어린 얼굴로 둘을 번갈아 보았다.


파파베르는 잘게 떨리는 눈동자로 크로커스를 보았다. 그는 저렇게 직접적으로 ‘라미아’를 입에 올린 이를 간만에 보았다. ‘사냥’ 이후로 심심치 않게 오르내리던 저들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대부분은 특유의 습성을 아는 이들이 옮긴 이야기에 기반한 비난이었다. 그들은 라미아를 악마의 자식이라 지칭했다. 이 때문에 라미아들은 강제로 인간 사회에 드러난 이후, 최대한 자신들의 존재를 숨기고자 했다. 거기에는 제 아름다운 노예를 독점하고픈 노예주들의 노력도 약간 들어갔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미아의 존재는 알 만한 이는 아는 것이 되어버렸다. 인간과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라미아만의 특성 때문이었다. 어차피 드러날 사실이라면 말할 수 있는 것은 지금 말하는 것이 차라리 안전했다. 크로커스의 눈에는 이미 확신이 서려있었다. 파파베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뭔데!!! 너희들만 알지 말고 우리도 좀 알자!!!!”
“시끄러워, 로저.”


일상적인 투닥거림을 들으며 파파베르는 말을 골랐다. 이렇게 많은 이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몇 년 만이라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 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한참을 망설이다 파파베르는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라미아는.... 제 고향 섬 이름입니다.”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가 시작되자 파파베르를 제외한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물었다. 그는 그 모습이 조금은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다. 바로 몇 시간 전에 이들이 제 전 주인과 그 부하들을 그리 무참히 살해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아마 직접 보지 못 했다면 그 역시 믿지 않고 고개를 가로 저었을 것이다.


“그리고 저와 같은 이들도 라미아라고 부릅니다. 라미아는 고향 섬의 이름이자, 제 종족의 이름인거죠.”
“인간이 아닌 건가?”
“인간과 라미아는 다릅니다. 저희는 인간들처럼 식사를 하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라미아는 꽃을 주식으로 합니다.”
“엑?!!”


그 말에 모두가 기함했다. 무슨 동화 속 요정도 아니고 꽃을 먹고 살아?


“ㄲ, 꽃?”
“네.”
“내가 아는 그 꽃?”
“네. 라미아는 인간들의 일반적인 식사에 맛을 느끼지 못 합니다. 영양소도 섭취하지도 못 하고요. 맛도 느끼지 못하고, 도움도 되지 않으니 먹을 이유가 없지요.”


앞의 주인들은 라미아의 식성에 조금 신기함을 느꼈을 뿐 로저 해적단처럼 유난스러운 반응은 아니었기에 파파베르는 당황스러움에 눈치를 살살 보다 제 구명줄인 레일리를 보았다. 그는 그제야 제 의문이 풀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렇군, 그래서 몸이 이렇게 차가운 건가.”
“그, 그럼 꽃 못 먹으며 죽어?”
“멍청아! 넌 밥 못 먹으면 살 수 있냐?!”
“이런 우리 배에 꽃은 없는데.”
“섬에 들러서 좀 사는 게 어때? 곧 있으면 베르 섬이야.”
“시끄러워!!! 말 좀 듣자, 이놈들아!!”


크로커스의 타박에 조개처럼 다들 입을 다물어 파파베르는 수월하게 말을 이을 수 있었다.


“저희는 몸에 온기가 돌지 않습니다. 그리고 개인마다 특유 체향을 가지고 있고, 제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대부분 아름답고 잘 늙지도 않아서 노예사냥의 대상이 되었죠. 라미아는 후각이 비정상일 정도로 발달되어 있는 대신에 다른 감각들은 보통 인간들과 종족들에 비해서 많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제 한 몸 지키기도 벅찬 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들의 시선이 빈 말로도 사내라 하기에 무리가 있는 근육 하나 없는 가녀린 육체를 훑었다.


“그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흰 아주 오래 전부터 스스로 외부와의 교류를 자체적으로 차단했습니다.  하지만..... 3...년 전 사냥으로 모두 죽거나 노예가 되었죠. 라미아는 노예로써 최상의 조건을 가진 존재니까요.”


파파베르는 담담하게 말을 맺었다.


왜 나는 이런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이 사람들에게 하고 있을까. 어차피 알게 될 일이라서? 그래서 그런 걸까.


자신의 행동에 대해 파파베르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짧지만 전반적인 이야기를 내뱉은 후였고 그것은 주어 담을 수 없었다.


로저 해적단은 남의 이야기를 하는 양 시종일관 덤덤한 표정의 파파베르를 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름대로 세상사에 잔뼈가 굵어진 그들이라 할 지 라도 아픈 말은 언제나 아픈 법이었다. 저렇게 현실에 체념하기까지 그는 얼마나 절망했을까. 로저 해적단의 선원들은 입맛이 썼다.


“그럼 지금 나이가?”


요리사인 마지루스가 묻자, 파파베르는 열일곱이라고 대답했다. 그러기가 무섭게 모두의 시선이 레일리에게로 향했다. 흡사 생애 최고의 악당을 보는 듯한 눈동자가 그들의 부선장을 꿰뚫을 듯 살벌했다. 반대로 레일리는 상당히, 아주 많이 당황한 얼굴이었는데 오늘 처음 만나 방금까지 여유롭기만 하던 이가 그런 표정을 지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레일리, 이 미친놈!!!!!”
“양심이 없어도 너무 없는 거 아니오, 부선장!!”
“야아-!!! 역시 실버즈 레일리!!!!! 남자다!!!”
“남자가 아니라 저건 도둑놈..... 아니 도둑 할애비다, 이 또라이 같은 놈아!!!”


말 그대로 미쳐 날뛰는 이들을 때문에 파파베르는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하지 못했다. 지금에라도 말을 해야하나 고민을 하던 그는 자신에게 저 미친 상황을 정리할 능력이 없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빠르게 단념했다.


그것을 말하고 좋은 눈길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마 이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잠시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었던 크로커스의 눈치를 살폈으나 그 역시 라미아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닌 듯 파파베르에게 그 외에 것은 따로 묻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레일리와 파파베르의 나이 차에 다른 이들처럼 정신이 나가 버린 건지도 몰랐다. 허나 파파베르에겐 아무래도 좋았다. 그에게는 숨기고만 싶은 사실이니까.


“왜 그러지?”


레일리가 동그란 머리통 위로 투박한 제 손을 얹었다. 저 난리통에서도 레일리의 검은 눈동자는 오롯이 파파베르만을 응시했다. 침대 위에서와는 다른 온기가 그에게로 떨어졌다. 그러고 보면 그는 아까 정사 때도 이렇게 다정한 손길로 파파베르를 쓰다듬었다. 생각이 미치기가 무섭게 이유를 알 수 없는 울렁거림이 그를 사로잡았다. 괜한 기분에 그는 오른 손으로 자신의 왼손을 주물렀다. 그러나 그런다고 언제나와 같은 손에 온기가 돌리 없었다.


“춥나?”
“아뇨.”


자신의 두 손을 잡아 느긋하게 주무르는 레일리의 손을 보며 파파베르는 고개를 저었다. 그 대답에도 레일리는 여전히 파파베르의 손을 아프지 않게 꾹꾹 주물렀다. 마치 그 두 손에 온기가 들길 바라는 것처럼.


이 사람에게는 다 이야기 해야겠지. 내 주인이니까.


레일리가 파파베르의 손을 잡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 수 록 파파베르의 기묘한 울렁증은 계속 되었다. 파파베르는 이 울렁증이 그가 앞전의 주인들과는 다른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상한 사람.


하지만 파파베르는 그것이 왠지 모르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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