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리지널 캐릭터 주의.

* 오타 주의.


파파베르는 자신을 찍어 누르는 비대한 몸뚱이 아래에서 익숙한 모양새로 허리를 움직였다. 언제나 그렇듯 달뜬 신음과 숨결이 불쾌하게 목덜미 위로 쏟아졌다.


이번에는 얼마나 가려나.


격렬한 움직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념을 이어가며 아이는 태엽 인형 마냥 아름답게 울었다. 뜨거운 열기와 신음이 가득한 침대 위에서 파파베르는 눈을 감았다.




***


로저 해적단이 레튬 해적단과 전투를 벌인 것은 지극히 우연의 일이었다. 애초에 샤본디나 워터 세븐처럼 방문이 거의 필수적인 섬이 아니라면 넓디 넓은 바다에서 타 해적단과 이렇게 맞닥뜨리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저 또라이 집단이라니!


레튬 해적단의 선장 카수스는 퍼렇게 질린 얼굴로 저를 향해 쇄도하는 칼날을 피해 굴렀다. 와중에도 그의 입은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실수였네! 이제 막 승선한 놈이라....”
“실수이던 고의이던 네 놈들이 내 선원을 건드린 것은 사실이지.”


필사의 변명을 잘라낸 목소리는 매섭고 싸늘하기가 겨울 섬의 찬바람보다 더 했다. 로저는 시퍼런 안광을 빛내며 입매를 말아 올려 웃었다. 그 모습이 흡사 먹이를 눈앞에 둔 맹수마냥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그것을 직접 마주한 카수스는 돌이키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허나 살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 몸뚱이는 쉼 없이 갑판을 이리저리 굴렀다. 그는 미처 볼 수 없지만 그의 선원들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레튬 해적단은 가을 바람 앞의 단품 마냥 피를 흘리며 고꾸라졌다.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 흠.....”


카수스를 향해 일방적으로 칼부림을 하던 로저의 눈썹 한 쪽이 못마땅하게 올라갔다. 곧 그의 공격이 한 층 더 날카로워졌다. 결국 카수스는 오래 지나지 않아 미처 피하지 못한 날붙이에 제 심장을 내어주었다. 눈꺼품이 채 감기기도 전에 까마득한 죽음이 그를 덮쳤다.


레일리는 배의 이 곳 저 곳을 깊숙이 돌아다니며 저를 보곤 사시나무마냥 벌벌 떨어대는 적들을 부지런히 베어 넘겼다. 규모가 있는 해적단답게 선실 수도 상당했다. 때문에 그는 선실들을 일일이 열어보는 대신 배의 가장 깊은 곳으로 발을 옮겼다. 자고로 보물은 가장 은밀한 곳에 숨기는 것이 인간의 심리인 법이다.


로저 해적단은 사실 레튬 해적단과 전투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피스 메인을 표방하는 만큼 쓸 데 없는 싸움은 피하자는 주의였으니까. 하지만 레튬 해적단 애송이의 객기 어린 총탄에 배의 견습 선원이 다쳤다. 명백한 고의였다. 그들은 피스 메인이었지만 동료의 위험 앞에서까지 평화를 외치는 병신들은 아니었다.


건드렸으면 책임을 져야지.


레일리의 얼굴 위로 삐뚜름한 미소가 어렸다. 그의 동료들이 보았다면 당장에라도 안전거리를 확보했을 만큼 살벌한 미소였다. 어느 새 마지막 선실 문 앞에 도착했다. 레일리는 망설임 없이 문꼬리를 잡아 돌려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가 문을 열자마자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코를 찌르는 향기가 가장 먼저 달려들었다.




***


파파베르의 공간은 언제나 고요했다. 그의 공간에 소리가 생기는 순간은 주인이 있을 때뿐이다. 그 순간만큼은 파파베르의 공간이 어떤 때보다 뜨겁고 소란스러웠다. 그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여튼 그랬다.


오늘은 무슨 일에서 인지 이른 아침 이후로 주인이 보이질 않았다. 평소였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파파베르는 그것에 별달리 의문을 품지 않았다. 궁금증이라는 것은 그가 생존하는 데 일말에 도움도 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터운 이불에 파묻혀 있던 가는 팔뚝을 뻗어 낮은 협탁 위를 더듬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손가락에 얽힌 것은 색색이 고운 꽃망울이다. 파파베르는 오색찬란한 꽃들을 하얀 이불 위로 떨어뜨렸다. 떨어진 꽃들은 마치 물감이 번진 것 마냥 현란한 모양새였으나 모로 누워있는 파파베르로써는 별 감흥이 없었다. 사실 위에서 내려 보았다 할지라도 별 감흥이 없었을 것이다.


색색의 꽃들 중 하나를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굴리던 그는 이내 그것을 자신의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푸른빛이 인상적이던 꽃망울은 모양새 좋은 입 안으로 사라졌다. 그것을 시작으로 파파베르는 붉은 색, 노란 색, 보라 색 가릴 것 없이 천천히 하나하나 씹어 삼켰다.


그 와중에 삐걱삐걱 노크도 없이 문이 열렸다. 이곳에서 저렇게 거침없이 행동할 수 있는 이는 한 명 뿐이었다.


카수스.


파파베르는 제 주인의 이름을 입 안에서 굴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안으로 들어서는 이는 생판 처음보는 낯서 자였다. 날이 시퍼렇게 선 칼을 든 남자는 찌를 듯한 피냄새를 동반했다. 파파베르는 기분 좋게 그 향을 음미하며 고개를 살짝 모로 기울였다. 짧지 않은 앞머리가 시야를 어지럽혔다. 허나 그에게 그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문이 열린 후부터, 일반 인간들보다 떨어지는 감각들 대신 비정상적으로 발달된 후각이 기다렸다는 듯 피냄새를 탐했다. 방에 있는 동안 어떻게 못 맡았을까 싶을 정도로 진한 향은 파파베르를 흥분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그러나 그는 그에 몸을 맡기는 대신 미소를 지었다. 요요하면서도 무구한 웃음이 침입자를 향했다.


“....안녕하세요.”


그를 유혹해. 그러면 넌 또 다시 살아남을 거야.


본능이 속삭였다.




***


레일리는 눈 앞에 있는 이를 굳은 얼굴로 응시했다. 그것에 대응하듯이 푸른빛도 연둣빛도 아닌 오묘한 눈동자 또한 그를 응시했다. 느른한 눈매에 감싸인 눈동자는 소름이 끼칠 만큼 고요하고 적막해서 오히려 사내의 음심을 자극했다.


“안녕하세요.”


아름답고 매혹적인 가면이 무심한 얼굴을 감추고 낮은 미성이 귀를 간지럽혔다. 더 진해질 수도 없을 것 같던 방 안의 향이 더욱 짙어졌다. 레일리는 미간 사이를 더 좁히고 살기를 흘렸다.


“뭐냐.”


상식적으로 상대방에게서 나와야 하는 말임에 분명한데, 레일리도 그도 상황의 특이점에 대해서는 인식하지 못 했다. 오히려 그는 저를 목표로 한 갑작스러운 살기에 겁을 잔뜩 집어먹은 채, 두터운 이불 사이로 몸을 숨겼다. 그러면서도 레일리의 질문에 나름대로 대답을 하고자 하는 것이 순종적인 애완 동물 같았다.


“파.... 파.... 베르....”
“파파베르?”
“......네.”


방금 전까지 유혹의 손길을 내밀던 이는 온 데 간 데 없고, 겁에 질린 아이만 남았다. 레일리는 다시금 찬찬히 파파베르를 살폈다. 돌아온 대답은 기대치에 한참 못 미쳤으나, 아까 본 겉모습만으로도 레튬에서의 위치를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는 고민했다. 죽일 것인가, 살릴 것인가.


“살려 주세요.”


마치 레일리의 고민을 알고 있는 것 마냥, 파파베르의 눈 가에 눈물이 아롱아롱 맺혔다. 길고 촘촘한 속눈썹이 반질반질하고 부드러운 얼굴 위로 음영을 드리웠다. 처연한 자태를 눈에 담으며 레일리는 침대가로 다가섰다. 그리곤 선을 뻗어 선이 얇은 턱을 잡아 올렸다. 피부가 비정상적일 정도로 차가웠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처음처럼 검은 눈동자와 오묘한 색의 아름다운 눈동자가 맞물렸다.


“살려 주세요.”


다시 한 번 애처러운 목소리가 목숨을 구걸했다.


“.... 그럼 넌 무엇을 할 수 있지?”


사람의 목숨에 대가성을 따지지 않는다. 죽일 것이라면 죽이고, 살리고자 한다면 살린다. 그러나 그는 지금 파파베르에게 목숨을 담보로 대가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상대에게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자기혐오가 고개를 들었으나 애써 그것을 내려 눌렀다. 그 답지 않았다. 정말로.


허나 레일리가 그 다운 행동을 하던, 그 답지 않은 행동을 하던 파파베르에겐 아무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원한 대답을 취했다는 듯, 다시금 미소를 지었다. 레일리의 눈에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얇은 팔이 그를 향했다. 유려한 몸 선을 따라 이불이 흘러내렸다. 드러난 상체에는 정사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그러나 미처 그것을 눈에 담기도 전에 팔이 숙인 그의 목을 감쌌다. 훨씬 가까워진 몸에서 방 안의 향과 똑같은 향취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 향기로운 몸에는 온기가 돌지 않았다.


“무엇이든....”


지척에 다가와 느릿하게 움직이는 입술이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러자 레일리의 거친 입술이 그것을 집어삼켰다. 뜨거운 혀가 서늘한 입 안을 휘저었다. 혀끝이 입천장을 쓸고, 차가운 혀를 건드렸다. 그에 호응하여 파파베르의 혀 역시 유연한 움직임으로 레일리의 혀를 감아 올렸다. 둘은 고개의 방향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한참을 입을 맞추었다.


그렇게 미처 삼키기 못한 타액이 턱에 아롱질 때 쯤, 맞물려 있던 입술이 떨어졌다. 그러나 몸은 여전히 맞닿은 채, 파파베르는 숨을 몰아쉬며 다시 레일리의 귓가에 속삭였다.


“당신이 내게 원하는 것..... 무엇이든..... 다.......”


허리를 감싸 안은 팔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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