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붕을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 욕설 주의. 잔인함 주의. 오타 주의.

* 일부 캐릭터 ts 주의.



반쯤 잘려나간 목줄기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불과 1초 전만 하더라도 혈관을 타고 부지런히 내달리며 본분해 충실했던 그것은 서늘한 공기와 맞닿아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제는 익숙해져 별 다른 감흥도 일지 않는 핏물 세례를 담담히 얼굴로 받으며 카게야마는 목에 박힌 나이프를 힘주어 뽑아냈다. 촤악- 적나라한 소리와 함께 붉은 빛을 띠는 액체가 더 다량으로 오물 투성이 인 바닥에 쏟아졌다. 인간의 몸에 이렇게 많은 피가 돌고 있다는 놀라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당연한 사실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카게야마는 뽑아낸 나이프를 이미 식어가고 있는 시체의 옆구리에 한 번 더 우악스럽게 쑤셨다가 뽑아내었다. 일종의 확인 사살이자, 유쾌하지 못 한 그만의 작업 습관이었다.


 드문드문 겨우 사위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만 걸린 흐린 전구빛에 의지해 보이는 주변은 누군가가 붉은 색 페인트를 한 통 그대로 쏟아 부운 것과 비슷한 모양새였다. 아마 이 곳이 온갖 범죄의 온상지가 아니고, 주위로 퍼지는 것이 피냄새 특유의 비릿함이 아니었다면 얼추 몇은 그렇게 믿었을 것이다. 그리고 믿지 못 하는 사람도 대충 눈을 감았겠지. 그러나 이미 공기를 부유하는 진한 존재감은 피냄새 특유의 묵직함이었고, 바로 앞에 그 진원지가 식어가는 고깃덩어리가 되어 엎어져 있었다.


 카게야마는 허리를 숙여 미동조차 없이 엎어진 남자의 머리채를 단단히 틀어쥐고 마치 무거운 물건을 옮기 듯 질질 끌어 골목 사이로 던져 넣었다. 아마 내일 아침 사이에 시체와 피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것이다. 이 곳은 그런 곳이었다.


진득한 피를 머금은 채, 살벌하게 날이 선 나이프를 갈무리 해 후드 주머니에 넣은 그는 반대편 주머니에서 구식 폴더 휴대폰을 꺼냈다. 붉게 젖은 손이 폴더를 열고, 카게야마는 익숙한 폼으로 자판을 꾹꾹 눌렀다. 작은 자판 위로 채 마르지 않은 핏물이 묻어났다.


[쓰레기 버렸습니다.]


익숙한 몸짓과 달리 문자를 작성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결과물은 민망스러울 정도로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그럼에도 문장 하나만 달랑 적힌 문자가 제대로 전송되었음을 확인한 카게야마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발걸음을 빠르게 놀렸다. 오늘치 일을 모두 끝낸 그의 머리 속에는 두 가지 생각 밖에 남지 않았다.


 하나는 저가 '쓰레기를 버리러' 다녀올 동안 집 지키는 강아지마냥 방 안을 뒹굴고 있을 제 동거인, 또 하나는 현재의 이 미칠듯한 공복감을 해소해 줄 음식. 점점 더 빨라지던 그의 다리는 이젠 숫제 나는 듯 달리기 시작핬다.


.

612호. 그 앞에 선 카게야마는 거칠게 문을 두드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자리에 들었을 새벽의 침묵을 가르고 둔탁한 소음이 복도를 울렸다. 타인의 수면 시간을 배려해야 한다는 섬세한 고려따위 그에게는 거북이가 직립 보행을 한다는 말만큼이나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문 열어, 멍청아."


두들김에도 열릴 기색 없이 잠잠하기만 한 문에 카게야마는 피에 젖어 이리저리 뭉친 앞머리를 짜증스럽게 쓸어 넘기며 틈새로 속삭였다. 그러기가 무섭게 걸쇠가 풀리는 소리가 들리고, 언제 닫혀있었냐는 양 문이 호쾌하게 열렸다. 평소와 같이 그가 문에서 빠르게 멀어지지 않았더라면 십 중 십,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문과 눈물 어린 키스를 나눴을 것이다.


"토비오!!!!"
"문 좀 살살 열라고, 히나타 멍청아!!!!"
"토비오, 완전 도깨비 같아!! 냄새!!!!"
"들어가기나 해!!"


쾅쾅-!!! 동네 떠나가라 바락바락 악을 쓰는 대화에 짜증 어린 타격음이 왼쪽 벽을 울렸다. 필시 단잠을 방해하다 못 해 찢어발기는 소음에 문을 걷어차고 나오는 대신 차선으로 선택한 행동의 결과임이 분명했다. 그 소리로 인해 탁구마냥 치고 받던 소란스러운 대화가 뚝 끊겼다. 방금의 소란이 거짓이었던 것처럼 히나타는 작은 몸피를 더욱 작게 웅크리고 눈치를 살폈다. 지나치게 안절부절 못 하는 그녀의 모습에 카게야마는 인상을 구기며 안으로 제 몸을 밀어넣었다. 그리고 그의 거친 손길에 히나타의 얇은 팔뚝이 잡혀 끌어당겨졌다.


"야, 뭐해. 추워. 문 닫아."


말과는 달리 카게야마는 자신이 직접 문을 닫고, 안전 고리까지 야무지게 걸었다. 온갖 허름한 것들 속에서 안전 고리만이 반짝반짝한 새 것이었다. 의외의 부분에서 꼼꼼한 카게야마가 히나타와 동거를 시작하면서 직접 단 것이라 아직 3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작정하고 때려 부순다면 순식간에 무용지물로 변할 것이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손에 묻은 피는 이제 거의 말라 히나타의 팔뚝이 묻어난 것은 지극히 소량이었으나, 직접적으로 홀딱 뒤집어 쓴 카게야마의 얼굴과 머리카락은 사정이 좋지 못 했다. 웬만한 사람은 보기만 해도 졸도할 모양새를 하고 잡고 있던 팔을 놓은 카게야마는 주방 도구가 있는 곳을 어슬렁거렸다.


"배고파."


비릿한 피냄새를 방 안 가득 폴폴 풍기며 렌지 위의 커다란 냄비에 손을 뻗었으나 뒤따라 온 히나타가 잽싸게 앞을 막아서며 카게야마의 손등을 쳐냈다.


"정지!"
"뭐!….야, 멍청아."
"카게야마 토비오 씨. 지금 자기 꼴을 보고도 아무 생각이 안 드십니까."
"배고프다고."


타협점이라곤 한 치도 찾아볼 수 없는 단호한 한 마디에 히나타는 재고 없이 직접 카게야마의 등을 밀며 화장실 쪽으로 향했다. 뚱한 얼굴을 하고, 불퉁거리는 목소리로 끊임없이 투덜거리면서도 몸뚱이는 순순히 이끌려 화장실로 걸어들어 갔다. 허나 순순한 것은 순순한 것이었고, 지금 상황이 그의 생각과는 한참 다른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기에 그는 화장실 한 가운데 서서 기분이 상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그녀를 내려다 보았다. 그 고압적인 모습에 히나타는 고개를 절래절래 내젓더니 창관의 나이 어린 동생들을 어를 때와 같은 목소리로 협상의 손길을 내밀었다.


"지금 씻고 나오면 카레 위에 반숙 계."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화장실 문이 닫히고 안에서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번개와도 같은 태세 전환에 히나타의 얼굴이 잠시 짜게 식었지만, 곧 바람이 빠지는 웃음을 터트리곤 몸을 돌려 찬장에서 작은 냄비를 깨내 물을 받았다.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작은 등에서 일상이라는 이름의 향기가 스몄다.



***


흉터가 빼곡한 남자의 등이 간헐적으로 떨렸다. 탄탄하게 들어찬 근육과 흉들이 그가 지나온 삶과 수컷으로써의 우월성을 간접적으로 드러내주었다. 잘게 뒤척이던 남자는 이내 베개를 베고 있던 얼굴을 약간 들어 협탁 위 시계를 살폈다. 오후 5시. 평소와 그리 다르지 않은 기상 시간이다.


"다이치….?"


짙은 색의 이불에서 뻗어나온 새하얀 팔이 사와무라의 헐벗은 등을 끌어 안았다. 정확히 말하면 걸쳤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이었다.


사와무라는 엎드렸던 몸을 돌려 바로 누우며 저에게 부딪혀 오는 연인의 얄쌍한 몸을 품 안에 가득 끌어 안았다. 서로에게 느껴지는 온기가 늘어진 신경줄 더욱 나른하게 했다.


"좀 더 자, 스가."
"몇…. 시야…..?"
"다섯 시."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뜨는 스가와라의 은회색 눈동자는 아직 잠기운이 다 가시지 않은 듯, 흐리고 몽롱했다. 사와무라는 그런 그의 등을 토닥이며 다시금 잠을 유도했으나 스가와라는 절래절래 고개를 내저었다. 자연스럽게 그의 은발이 단단한 가슴팍에 다가와 간지러운 마찰을 일으켰다. 사와무라의 토닥임이 점점 다른 것을 주장하며 은밀하고 은근해지기 시작했다.


"안 돼, 다이치. 나 오늘 가게 나가봐야 돼. 당신도 오늘 회합 있다며."


내뱉어지는 말과 달리 스가와라의 행동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가지런히 관리된 새하얀 손끝이 사와무라의 유륜을 천천히 덧그리고, 둘의 다리가 새벽과 같이 뱀처럼 얽혔다. 스프링이 나간 매트리스가 단발마를 내지르자 눈 깜짝 할 새에 사와무라가 스가와라를 찍어누르며 입을 맞췄다. 서로를 탐하는 손길과 입맞춤에서 농염한 열기가 묻어났다.


"아….ㅎ..읏..! 다, 다이치…!"


두툼한 혀가 목선을 따라 내려가며 키스 마크를 새겼다. 색이 채 바래지도 않은 곳에 그렇게 새로운 꽃이 또 하나 피어났다. 그 야살스러운 모습에 사와무라는 심장이 뻐근해졌다. 목덜미를 배회하던 입술이 귓가로 옮겨가 귓볼을 잘게 깨물며 낮게 속삭였다.


"예뻐, 코우시."


그 말에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눈꼬리를 접어 웃으며 스가와라는 사와무라의 목에 팔을 당겨 입을 맞추고 혀를 얽었다. 보는 사람이 달아 오를 만큼 노골적으로 두 개의 혀가 쉴 새 없이 얽히고 풀리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색욕이 몸을 맡긴 두 사람 분의 숨소리와 신음이 방 안을 넘치도록 채웠다.



***


딱히 정해진 이름은 없다. 곳곳마다 마약굴이 들어차 있고, 바닥은 알 수 없는 오물 투성이. 하루가 멀다하고 살인과 절도, 폭행, 강간이 횡횡하며 수많은 인종이 뒤섞여 살아가는 쓰레기장. 힘이 곧 권력이고, 살아남은 자가 옳으며, 힘이 없는 것이 죄가 되는 곳. 약육강식. 생자적존. 이 여덟 글자가 곧 진리인 사회. 바깥 사람들은 이 곳을 마굴이라 부르고, 안의 사람들은 이 곳을 성채라 부른다. 바깥 사람들은 이 곳이 정확히 어떤 곳인지 모르고, 안의 사람 역시 그들이 디디고 있는 곳이 어디쯤인지 알 수 없다.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바라보는 사람에게도 불친절한 이 곳에 대해 한 가지 만은 모두 입을 모아 말한다.


이 모호한 사회는 이 곳만의 정의와 질서가 존재한다.


"오야오야? 빨리 왔는데, 칭(靑)?"
"차라리 이름을 부르지 그래, 쿠로오 테츠로."


가장 안 쪽에 등을 맞대고 앉아 눈을 감고 있던 칭의 보스, 이와이즈미 하지메가 심기 불편한 얼굴로 맞은 편에 엉덩이를 붙인 쿠로오를 쏘아 보았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남의 속을 박박 긁는 저 도발과 능청스러움은 한 풀 꺾이기는 커녕 더욱 노련해졌다. 순간 이와이즈미는 '센스는 갈고 닦는 것'이라며 종종 말하던 제 마누라를 떠올리며 저 놈은 저 거지같은 센스를 언제까지, 얼마나 갈고 닦을 생각일까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에게 쿠로오 테츠로라는 인간은 언제나 속을 알 수 없는 기분 나쁜 녀석이었다. 그리고 참 유감스럽게도 그러한 감상은 이와이즈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내가 너무 늦었네. 미안."


쿠로오가 자리에 앉기 무섭개 사와무라가 묵직한 걸음걸이로 들어섰다. 그는 자연스럽게 이와이즈미의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3년 가까이 이어진 정기적인 회합인 만큼 겉도는 것과 같은 어색함은 없었으나, 서로의 근황을 물을 만큼 살가운 자리도, 관계도 아니었기에 세 사람 사이에는 늘 그렇듯 불편한 침묵이 내려 앉았다.


애초에 이 회합은 정기적인 수 읽기에 불과했다. 팽팽한 세력의 균형을 일정한 시일에 맞추어 확인하고, 서로를 견제하는 것. 그것이 회합의 본질이었다. 지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세 사람과 아직 나타나지 않은 한 명 더. 성주를 끌어내려 목을 치고 성채를 네 구역으로 갈라 집어 삼킨 짐승들은 서로의 목줄기를 물어 뜯기 위해 지금도 호시탐탐 기회를 보고 있었다.


"이야아!! 다들 빨리 왔네!!!"
"넌 어째 매번 이렇게 늦냐, 부엉이 새끼야."


익숙한 잔잔함, 칼날 위를 걷고 있는 것과 같은 숨막히는 긴장감이 한 사람의 등장으로 인해 삽시간에 무너져내렸다. 위풍당당. 온 몸으로 네 글자를 외치며 시끄럽게 들어와 소리가 나도록 의자에 앉은 보쿠토에게 쿠로오가 노골적으로 한심하다는 얼굴을 하며 타박을 놓았다.


"원래 주인공은 가장 나중에 등장하는 법!!!!"


그러나 이러한 패턴의 상황은 회합때마다 거의 대부분 한 번 씩 되풀이 되었기에 보쿠토는 호쾌하게 웃으며 넘겼다. '하여간 유쾌하게 미친놈.' 다른 방향에서 욕이 하나 더 날아들었다.


"다들 한 달 만이네."
"아아."
"그러게!"


사와무라가 운을 떼자 이와이즈미가 받고, 아직 만면에 호방한 웃음을 띠고 있던 보쿠토가 긍정했다.


"다들 여전히 건강하네!!"


그리고 말꼬리를 끊은 보쿠토는 얼굴에서 웃음기를 걷어냈다.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은 방금과는 전혀 궤를 달리 했다. 좀처럼 볼 수 없는 황금빛 눈동자가 순수한 살심을 담고 요요히 빛났다.


"아쉽게."


아쉬움을 토로하는 혀바닥이 아랫 입술을 쓸었다. 그 모습이 마치 허기진 맹수와도 같았다.


"더 이상 아쉬울 필요 없이 씹어 먹어 줄까?"


노골적인 도발에 이와이즈미가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그의 관자놀이에 혈관이 도드라졌다. 공기가 다시 팽팽하게 조여 들었다.


"우리 근육 부엉이가 한 달 새에 필살기라도 연마했나 봐. 응? 왜 이렇게 자신감이 넘치실까?"
"그런 거 없어도 이 몸은 언제나 최강이라고, 괴물 고양이."


저에게로 쏟어져 오는 살기에도 보쿠토는 그저 재미있고 즐거운 지 이까지 드러내며 웃음 지었다. 세 마리의 짐승이 서로를 향해 밀리지 않고 으르렁거리는 상황을 조용히 관망하며 사와무라는 턱을 괴었다. 그런 그의 몸짓에서 상황에 전혀 개입할 뜻이 없음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이러니저러니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개싸움이 날 것 같아도, 보여지는 것과 달리 능구렁이 같은 저 괴물들은 정면충돌은 피할 것이다. 세력이 비등한 서로가 날을 세워 부딪혀 보아야 남은 선택지는 공멸뿐이라는 것을 넷 중 가장 단순한 보쿠토마저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이 위태로운 소강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될 지는 몰라도 아직까지는 괜찮았다. 승리를 장담하는 엄청난 보증 수표가 떠오르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이야기는 충분히 했어?"


한 동안 생산성 없는 자존심 싸움을 지켜보던 사와무라가 빙긋 웃음을 그려내며 물었다. 그에 계면쩍게 목 뒤를 쓸어내리는 이와이즈미와 달리 나머지 둘은 뻔뻔한 얼굴로 고개를 저어댔다.


"딱히 할 말도 없잖아?"


소란스러웠던 상황이 무색하게 보쿠토는 권태로운 몸짓으로 의자 등받이에 팔을 걸치며 거침없이 대꾸했다. 그의 말대로 그들이 성채를 나누어 삼킨 후 생긴 회합은 그럴싸한 포장지와 달리 그리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안에 들어찬 목적은 음흉하기가 짝이 없었지만. 허나 그 속사정까지 모두 헤아릴 수는 없는 제 3자가 만약 그들의 모습을 보았더라면 분명히 권력자들의 지루한 탁상공론이라 칭했을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까 갑자기 생각 났는데. 오이카와는 잘 지내? 여전히 예쁘지?"
"신경 꺼라. 남의 마누라한테."
"이- 야-. 질투하는 거야, 이와이즈미?"
"이 씨발…"
"워워. 진정해, 진정. 그냥 안부 묻는 거라고."


유난히 제 여자를 감싸기로 유명한 이와이즈미가 빠르게 등허리로 손을 가져다 댔다. 지금 당장이라도 총알을 갈길 모양새에 쿠로오는 항복을 하 듯 두 손을 들어 보이며 습관과도 같은 능청스러운 웃음을 내걸었다. 그 모습을 보며 보쿠토는 그 새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이곤 제 애인이 더 예쁘고 섹시하다머 근본 없는 역성을 들었다.


"요새 7번가가 묘-해. 해로운 새 냄새가 은근히 난단 말이지."
"남의 구역에 신경 끄고, 남의 마누라한테도 신경 꺼."
"너무해, 칭. 이 쿠로오 씨가 친절하고 상냥하게 경고까지 해줬는데."
"와- 양심 없는 새끼."
"염병. 그리고 그 따위로 부르지 말라고."


빠르게 날아오는 욕지기를 들으며 쿠로오도 담배를 물었다. 그러자 이와이즈미 역시 기다린 것처럼 담배곽을 열었다. 옆 자리에 앉아 그 모습을 본 사와무라는 겉포장에 적힌 '멘솔'이라는 단어가 이와이즈미와 퍽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했다. 사와무라를 빼곤 하나같이 짠 듯 입에 구름 과자를 하나 씩 물고 사이 좋게 탁한 연기를 부지런히 내뱉었다.


"쿠로오는 오늘 기분이 영 별로인가 봐."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봤더니 기분이 아-주 날아갈 것 같은데?"
"그래? 난 또 요새 5번가에 뱀비린내가 심하게 난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기분이 별로인 줄 알았지. 내가 잘못 짚었나 봐."


아무런 사심 없는 멀끔한 미소로 요즘 홍의 구역인 5번가에서 '두슈어'라는 이름으로 마약을 팔아치우고 있는 소규모의 조직을 꼬집는 사와무라의 말에 쿠로오의 얼굴이 찰나의 순간 굳었다. 그는 곧 노련하게 표정을 수습했다. 까득- 허나 과하게 들어간 힘을 빼지 못 한 턱뼈로 인해 어금니들이 부대끼며 살 떨리는 소리를 냈다.


"우리 쪽에 관심이 많네, 헤이(黑)."
"그냥 그래. 너무 그렇게 날 세우지 마."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밀폐된 공간을 가득 채운 담배 연기가 네 마리의 짐승을 독하게 감싸 안았다. 이와이즈미는 타들어 간 담배 끝을 바닥에 털어내고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다시 입에 물었다. 서로가 건재함을 이미 충분히 알았으니 이번 회합도 필요를 모두 충족했다.


"어이. 난 간다."
"나도. 여전히 재미없어, 여기."


이와이즈미가 운을 떼자, 보쿠토는 기다렸다는 듯 동조하며 기대고 있던 등받이에거 몸을 일으켰다. 커다란 몸을 위태롭게 지탱하던 의자가 작게 비명을 내질렀다. 1시간도 채 되지 않을 민망한 회합이 빠르게 정리되었다.


"오야. 아쉽게 벌써 파하는 거야?"


말과 달리 쿠로오의 그 어떤 부분에서도 아쉬움은 비춰지지 않았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그의 모습에는 오히려 어울리지 않는 상큼한 기운이 흘러내렸다. 그 사이 다 타버린 담배를 바닥에 내던져 짓이긴 보쿠토가 가장 먼저 입구에 가까워졌다.


"아직이야."


불시에 들려온 목소리에 입구로 향하던 세 사람이 뒤로 돌았다. 유일하게 아직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사와무라가 느지막하게 몸을 세웠다.


"아직이라고."


다시금 퍼지는 낮고 잔잔한 한 마디에 그들은 말없이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 가장 마지막에 방을 나서는 쿠로오의 뒷모습을 눈에 담은 사와무라 역시 그제서야 느리게 걸음을 뗐다. 바닥에 버려진, 아직 불씨가 가시지 않은 몽땅한 담배 꽁초가 그의 눈에 걸렸다. 사와무라는 꺼져가는 불씨 위로 발을 비볐다. 불씨를 빼앗긴 짤퉁한 것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미련없이 들어올 때와 같은 묵직한 발걸음을 옮겼다. 떠나는 그의 뒤로 처량맞게 버려져 불씨가 꺼진 담배의 필터에는 초록색 띠가 둘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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