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붕을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 욕설 주의. 잔인함 주의. 오타 주의.

* 일부 캐릭터 ts 주의.

* 시궁창 인생 츳키가 잘 나가는 쿠로오 만나서 팔자 피는 이야기를 생각했는데 왜때무네.. (쥬륵1111)

* 심지어 이와오이는 나오지도 못했어.....(쥬륵222)



정신없이 내달리는 뒤로 족히 대여섯은 되는 발걸음 소리가 집요하게 따라 붙었다. 츠키시마는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애써 가다듬으며 바닥을 박차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하이에나 떼에게 쫒기는 한 마리의 가련한 토끼처럼 그녀는 처절하게 달렸다.



“저 씨발년!! 잡히면 네 년 발목부터 끊어 놓을 거야!!!”



험악한 욕설이 당장이라도 머리채를 잡아챌 것만 같아 두려움이 일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힘이 빠져나가는 다리에 아주 좋은 원동력이었다.



남들보다 긴 다리와 짧은 머리카락이 오늘만큼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적이 없었다. 만약 그녀의 다리가 조금이라도 짧았더라면, 머리카락이 더 길었더라면 아마 저 뒤에서 사신마냥 따라 달리는 남자들에게 일찌감치 잡혀 먹잇감이 되었을 것이다.



골목, 골목을 쏘다니며 추격을 따돌리는 행위가 부질없게 느껴질 만큼 그들은 끈질겼다. 그리고 마침내.



쉼없이 움직이던 다리에 반사적으로 제동을 걸었다. 눈앞에 디디고 선 입구는 안력을 돋우고 집중을 해야 할 정도로 어두웠다. 그녀가 서 있는 곳의 밝기와 대비되어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그녀의 입장에서 보는 마굴의 첫 감상평은 그 모습이 알음알음 들었던 것과 한 치의 다를 바 없는 마귀의 굴 같아 소름과 함께 도드라지는 피부를 쓸어내리며 스스로를 다독여야만 했다. 무저갱의 어둠이 망설임을 계속해서 부채질했다.



“야!!! 이 미친!!!!”



마굴의 입구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를 발견한 추격자들이 맹렬한 기세로 달려왔다. 지금 당장 잡혀 개처럼 끌려가는 것과 저 곳으로 들어가 아주 잠시라도 목숨을 부지하는 것. 그것 외에는 그녀에게 달리 남은 선택지가 없었다. 츠키시마는 다시금 땅을 박찼다.



“아, 저 미친년!!!”

“마굴로 기어들어갔어.”

“독한 년! 진짜 미친 거 아니야?”



간발의 차로 그녀가 있던 곳에 닿은 그들은 사냥감을 놓쳐 버린 분노와 저 스스로 마굴로 향한 츠키시마에 대한 황망함이 뒤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그들이 다시 그녀를 쫒아가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무리 중에 한 명이 고개를 들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른 건물을 보았다. 곳곳에 칠이 벗겨지고 중간, 중간 불법으로 증축해 모양조차 기묘한 그것은 참 흉물스러웠다. 그는 츠키시마의 행동에 짧은 박수를 보내면서도 못마땅한 얼굴로 혀를 찼다.



“아, 씨발. 텄어. 상등품이었는데. 이자도 쏠쏠하고.”

“그러니까. 좆같네, 진짜. 마굴로 튈 지 누가 알았겠어.”

“야, 그래봤자 저기로 기어들어갔으면 길어 봤자 5분 안에 강간당하고 통나무 행이야. 일단 가자. 이제 어차피 못 먹는 떡이야.”



그들은 결국 기를 쓰던 추적이 무색하게 몸을 돌렸다. 그러나 끌리는 발걸음에는 놓친 먹이에 대한 놓지 못한 미련이 남았다.




***



필요에 의해 제멋대로 얼기설기 얽힌 건물들이 하늘을 가려 안은 그 흔한 햇볕 하나도 제대로 들지 않았다. 간간히 걸린 전구들만이 주변을 유일한 빛이었다. 운동화 밑창에 끈덕지게 달라붙은 오물이 꼭 방금 전의 추격자들 같아 츠키시마는 얼굴을 구겼다. 어딘지 모를 곳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록 온갖 것이 섞인 역겨운 악취가 더욱 진해져 비위를 거슬렀다. 미지의 장소에 대한 거부감과 공포 역시 자비 없이 츠키시마를 덮쳐눌렀다. 미로 같은 좁은 골목 사이로 무작정 헤치고 나아가는 다리가 이제야 슬그머니 고통을 호소했다. 허나 어딘지 모를 곳에서 멈추어 서 있을 수는 없는 일이라 그녀는 떨리는 다리로 느릿하게 걸음을 떼었다.



“아!”

“어디가, 언니?”



얼마 못 가 낯선 손길이 손목을 잡아채자 지친 몸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넘어진 채로 고개를 들자 누르스름한 전구 빛을 등진 남자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성채민 아니야.”

“엉?”



남자의 뒤로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구멍을 긁어대는 탁한 목소리는 듣는 사람에게 선뜩한 감정을 느끼게하는 데 충분했다.



“방금 쫓겨서 들어오는 걸 봤지.”

“아이구. 우리 언니도 뒤가 좀 구린 가봐, 응? 얼굴은 이렇게 예쁘장-한데.”

“쓸 데 없는 말 그만 하고 빨리 베껴. 먹어 보고 떼서 팔 건지, 모아서 팔 건 지 결정해야지.”



식사 메뉴를 고르듯 대수롭지 않은 말투였다. 남자가 몸을 낮추자 급격히 가까워진 거리에 츠키시마는 그제야 제 앞의 낯선 이를 똑바로 살필 수 있었다. 기이한 열기와 광기가 튀어 오르는 검은 눈동자가 그에게 바짝 다가섰다. 마굴 안의 악취와 같은 냄새가 남자에게서도 났다.



“니미. 가까이서 보니까 더 대박인데.”



남자는 떼가 끼어 거뭇한 손으로 츠키시마의 볼을 잡아 우악스럽게 돌려대벼 살폈다.



“.... ㄴ.... 놔...”

“엉....?”

“...흣....”

“뭐라고?”



쫘악! 성채 안에서는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소음이 주변을 요란스럽게 울렸다. 츠키시마는 왼쪽 뺨을 향해 매섭게 떨어져 내린 폭력에 맥없이 바닥을 굴렀다. 보슬보슬 향기가 묻어날 것만 같은 밝은 금발과 흰 뺨이 오물에 젖어들었다.



“아이고. 미안, 미안. 내가 좀 다혈질이야. 괜찮아, 언니?”

“아, 미친 놈. 더러워졌잖아. 성깔 머리 하곤.”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고통에 정신을 제대로 붙잡지도 못하고 바닥을 기는 그녀를 향해 무던한 목소리들이 값싼 동정처럼 던져졌다. 무자비한 행동과 어울리지 않아 더욱 무섬증이 일었다. 금세 부어오르는 뜨끈한 뺨을 본능처럼 감싸 쥐고 상체만 겨우 일으킨 몸으로 츠키시마는 뒷걸음질 쳤다. 그 모습이 퍽 가련해 보였으나 눈앞의 두 사내에게는 다르게 다가왔는지 그들은 입을 벌리고 탁한 웃음을 흘렸다.



“앙탈 부리는 거야? 무서운가 보네. 에이- 방금은 미안하다니까. 별로 아픈 거 안 해, 안 해.”

“아, 썅. 그만 질질.....”



이어지던 목소리가 부자연스럽게 끊겼다. 빙글빙글 웃으며 구석에 몰린 먹이를 농락하던 짐승 마냥 느긋하게 다가서던 남자는 빠르게 몸을 돌렸다. 그러나 누군지 모를 살벌한 손님이 한 발 더 빨랐다. 흔한 발자국 소리 하나 없이 성큼 다가 온 검은 손님은 망설임 없이 제 눈앞에 드리워진 이의 경동맥을 단번에 끊었다.



“컥.... 크.. 억....”

“너희 진짜 너무 한 거 아니야? 아니, 딴 주머니를 차려면. 응? 좀. 조용-히. 은-밀하게. 그렇게 해 쳐 먹던가. 내가..... 오야? 아. 벌써 뒤졌네. 딴 데를 쑤실 걸 그랬나.”



피가 묻어난 나이프를 지휘봉 마냥 휘두르며 나긋나긋히 말을 하던 검은 남자는 마지막 숨이 멈춘 시체를 보며 짜증스럽게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러나 자신을 무섭게 얼러대던 남자들이 순식간에 시체로 나뒹구는 꼴을 목격하게 된 츠키시마는 여전히 뺨에 손을 올린 채 덩그러니 굳어버렸다.



“역시 날붙이는 영 별로란 말이지.”



아직도 벌어진 살덩이 사이에서는 붉은 피가 울렁이며 흘렀다. 그녀는 제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일어난 살인의 현장에 손가락 하나 까닥이지 못 한 채 몸을 떨며 눈을 감았다. 도망쳐야 한다는 본능으로 몸을 움직였던 아까와 달리 지금은 그 본능조차 타의로 인해 찍어 나빌레라가 되었다.



“오야오야.”



벽에 붙어 눈을 감은 채 달달 떨고 있는 그녀를 드디어 본 그가 다가왔다. 이미 죽어나자빠진 남자와 달리, 역겨운 피 냄새가 진동하는 그 상황 속에서도 그에게는 매캐한 담배 냄새가 섞인 묵직한 남성용 향수 냄새가 느껴졌다.



“아가야. 여기서 혼자 다니면 안 된다고 어른이 안 가르쳐 주든?”



숨소리가 섞인 낮은 목소리가 지척에서 들려왔다. 나이프를 잡지 않은 남자의 반대 쪽 손이 아직도 뜨끈한 뺨을 짚었다. 그리 조심스러운 손길이 아니었기에 여러 일을 겪느라 짓이겨진 입술 사이로 작은 신음이 득달같이 터져 나왔다.



“흐읏...”

“참 야무지게도 때리고, 참 야무지게 맞았네. 나쁜 놈들이다. 그렇지?”



그러는 저는. 등장하기가 무섭게 사람 둘을 삼도천 익스프레스에 던져 넣은 주제에. 부드럽게 잔망을 떨어대는 목소리가 가증스러웠다. 부어오른 뺨을 타고 오른 거친 손가락은 단단히 내려 감긴 채 올라갈 생각이 없는 츠키시마의 눈꺼풀을 더듬었다.



“착하지. 눈 좀 떠볼까?”



계속해서 아무것도 보지 못 한 척 눈을 감고 있고 싶었다. 그러나 남자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저 뒤의 시체들과 같은 꼴이 날 것만 같았기에 그녀는 느리게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옳지, 옳지.”

“.....흐....”

“내가 무서워?”



아무 말도 못하고 공포로 움츠려든 채 저를 바라보는 츠키시마의 모습에 그는 바람 빠진 웃음소릴 흘렸다. 대답을 듣기 위해 한 물음이 아닌지 돌아오는 대답이 없음에도 그는 달리 신경을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눈물이 반쯤 차오른 눈가를 톡톡 치자 기다렸다는 양 눈물 한 방울이 더러워진 뺨을 타고 추락했다.



“겁을 먹었네. 불쌍하게. 자, 울지 말고. 뚝. 그렇지. 모처럼 쿠로오 씨가 좋아하는 예쁜 노란색인데. 아쉽잖아.”



츠키시마는 쿠로오가 말하는 ‘아쉬운’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으나 그것이 저에게 굉장히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것을 쉽게 눈치 챘다. 금방이라도 삭아 없어져 버릴 것 같은 아주 미미한 호기심과 흥미가 담긴 검은 눈동자가 눈물에 담뿍 저은 금안과 만났다. 둘 사이에 한 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그리고 그것을 깬 것은 남자가 먼저였다.



"아가야, 너 나랑 가자.”



권유와 명령. 그 어드매쯤 위치한 목소리로 쿠로오는 츠키시마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오묘한 말에 그녀는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떴다. 입에 털어 넣으면 레몬 맛이 날 것만 같은 금빛 눈동자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쿠로오는 그것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망설임은 없다. 그녀에게는 선택권이 없으니까. 츠키시마의 깡마른 손이 쿠로오의 소매 자락을 틀어쥐었다. 짧은 시간 안에 벌어졌던 모든 일은 스스로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알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자신이 홀로 이곳에서는 탈출을 할 수도, 살아남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였다. 흔히 말하면 ‘주제 파악’을 이미 끝냈다. 답지 않은 악력에 천이 볼품없이 구겨지며 주름을 만들었다. 그러자 그걸 보던 쿠로오는 손을 꺾어 츠키시마의 손목을 잡아 올렸다. 강한 힘에 힘없이 늘어진 상체가 반쯤 들렸으나 다리는 여전히 맥을 못 추었다.



“갓 태어난 짐승 새끼 같네. 서는 것도 이렇게 서툴러서야.”



놀리 듯 말을 한 쿠로오는 짧게 혀를 차며 아직도 손에 들고 있는 나이프를 접어 뒷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손목을 잡고 있던 손으로는 츠키시마의 등을, 다른 한 쪽으로는 그녀의 무릎 뒤를 받쳐 단번에 들어올렸다. 반사적으로 쿠로오의 목을 껴안은 그녀는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옷과 피부를 물들였던 퀴퀴한 오물이 피가 튄 쿠로오의 옷으로 옮겨갔으나 둘 모두 그것에 대해서는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근데 아가야. 너 좀 많이 먹어야겠다.”



딱딱한 품에 안겨 걸음걸이에 따라 일정하게 흔들리던 츠키시마가 조심스럽게 얼굴을 들었다. 쿠로오의 말의 진의를 판단하려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그럴 필요 없이 그가 직접 그녀의 귓가에 나직이 속삭였다. 그 속삭임에 츠키시마는 다시 쿠로오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팔에 힘을 주었다.



“난 글래머가 좋거든.”



주변 사람들이 보았더라면 기함하며 피했을 낮은 웃음소리가 귓가를 살살 간지럽혔다.


.



이 길이 그 길 같고, 저 길이 이 길 같은 하나의 거대한 미로인 성채 안을 걷는 쿠로오는 거침이 없었다. 자세만 그렇지 않다 뿐이지 거의 짐짝처럼 품에 안긴 츠키시마가 불편함에 조금 바르작댈 무렵 그가 걸음을 멈추었다. 털컹거리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그는 다시금 다리를 움직였다. 그런 그의 뒤로 만만치 않은 덩치를 가진 이들이 깊게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쿠로오와 츠키시마가 또 다른 문 넘어로 사라질 때까지 숙연던 고개를 들지 않았다.



“야, 이!! 그건 또 뭐야?!”



두 개의 문을 넘어온 건물 안은 생각보다 멀끔했다. 물론, 그것은 지극히 상대적인 기준이었기에 곳곳에서는 세월의 흐름이 느껴졌다.



“야쿠 너 여기 있었냐? 난 당연히 리에프랑 있는 줄 알았는데.”

“내가! 그 자식이랑! 왜! 같이 있냐아아아!!!!”

“왜긴 왜야. 그 자식이 너 없음 죽고 못 사니까 그렇지. 너도 그리 싫지 않잖아, 안 그래?”



등 뒤를 노리고 매섭게 치고 들어오는 발차기를 피하며 쿠로오는 야쿠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분에 겨워 씩씩대는 그를 쿠로오는 세상 다시 없을 즐거운 구경거리를 모는 것처럼 쳐다보며 웃었다. 그러나 곧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지극히 사무적인 것이었기에 야쿠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만 씩씩 대고. 일이야. 리에프랑 후쿠나가한테 애들 몇 붙여서 6번가 정리 좀 시켜.”

“6번가? 두슈어 놈들 5번가에서 설치고 다니잖아.”

“아니. 6번가야. 5번가는 연막.”

“아, 씨발. 거슬리게 구네, 새끼들.”

“동감. 이번 회합에서 마음이 좀 아팠으니까 리에프한테 예쁘게 정성 좀 들이라고 해.”



그렇게 말하며 그는 품에 안긴 츠키시마를 추슬러 안았다. 건전지가 다 된 인형마냥 맥없이 안겨있는 그녀를 보며 야쿠는 한 쪽 눈썹을 끌어 올렸다. 흘리듯 보아도 그가 지금 상황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음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그건 알겠고. 너한테 안겨있는 건 뭐냐고.”

“응? 아아. 오다 주웠어.”

“또 무슨 개 같은 짓거리를.....”

“아, 그러고 보니까 잊고 있었네. 아가 이름은?”



야쿠의 말꼬리를 싹뚝 잘라먹은 쿠로오가 츠키시마를 땅으로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제야 제 다리로 땅을 디딘 그녀는 분기탱천 한 야쿠를 슬쩍 곁눈질 하며 몇 번 입술을 달싹이다 조심스럽게 말을 뱉었다.



“츠.... 키시마 케이....입니다.”

“뭐야, 일본인? 일본인이 왜 여기에 있어?”



다시금 터져 나오는 목소리에 그녀도 똑같이 대꾸하고 싶었다. 타국 한 복판에서 같은 나라 사람을 만나기가 이렇게 쉬웠던가. 게다가 이렇게 온갖 번죄가 판을 치는 슬럼가에서.



“야쿠. 그렇게 말하면 너도, 나도 일본인이거든. 지금 성채에 굴러다닌 일본인이 몇인데. 됐고, 애 하나 시켜서 옷 좀 구해줘.”



쿠로오의 말에 야쿠의 얼굴이 더욱 오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츠키시마와 쿠로오를 몇 번이고 번갈아 본 후에 저가 아무리 난리를 쳐도 달라질 것은 없으리라 판단했는지 속에서부터 끌어 오르는 한숨을 내쉬며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자리를 떴다. 누가 보아도 쿠로오의 지시를 수행하러 가는 모양새라 그는 말없이 츠키시마의 어깨를 감싸 안고 좀 더 안으로 들어갔다.



어깨를 감싼 손은 마디고 굵고 단단했다. 방금 이 손이 사람 둘을 망설임 없이 골로 보냈더랬다. 끔찍한 사실이었지만 아까만큼 무섭지는 않았다. 체념을 한 걸까. 츠키시마는 시선을 올려 쿠로오의 옆태를 살폈다. 여자치곤 상당히 큰 키라고 자부해 왔는데 얼굴을 살피려니 시선을 한참 올려야 했다. 이게 남자와 여자의 차이인가.



“뭘 그렇게 봐? 쿠로오 씨가 그렇게 잘생겼습니까?”



허를 찌르듯 날아든 말이 의식의 흐름을 따라 이어지는 상념을 떨쳐냈다. 그리고 다시 바라본 앞에는 또 문이 하나 생겼다. 무슨 놈의 문이.



“문이 좀 많지. 보이는 것처럼 인기가 좀 많은 몸이라.”

“.... 적이 많은 게 아니라요?”



츠키시마의 말에 안전장치를 해제하던 쿠로오가 다소 놀란 눈을 하고 그녀를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를 만나고 처음으로 츠키시마가 그의 말에 제대로 된 대꾸를 한 탓이다. 곧 그는 재밌다는 감정을 숨기지 않은 채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안티 팬도 팬인 거 몰라?”

“긍정적인 삶의 태도. 보기 좋으시네요.”

“원래 이런 캐릭터야?”

“생애 처음으로 본 살인이라.... 여러 모로 만감이 교차해서요.”

“아아. 볼 꼴 못 볼 꼴 다 봤으니 더 이상 놀라울 것도 없다?”

“뭐... 그런 셈인가요.”



그 말에 커다란 웃음소리가 주변을 울렸다. 무엇이 그리도 웃긴지 쿠로오는 배를 잡아가며 큰 소리로 한참을 웃었다. 그렇게 꽤나 길게 이어지던 웃음소리가 점차 가시고 그는 상기된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 쪽 손으로는 꾸덕해져 버린 츠키시마의 머리를 헝크렸다.



“아아. 건방진 게 마음에 드네. 귀여워.”



쿠로오가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을의 입장으로써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츠키시마 역시 그를 따라 안으로 들었다.



지극히 평범한 공간이었다. 부엌은 따로, 방 하나, 화장실 하나. 각종 세간들이 들어가 있는 한 명이 살기에는 좀 넓고, 둘이 살기에는 조금은 좁은 그런 공간.



의외였다. 그가 그녀에게 같이 가자 말을 했지만, 츠키시마는 그가 자신을 어딘가 매음굴에 던져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그는 저를 자신의 공간에 들였다. 이상했다. 이상한 사람이다.



“여기서 살면 돼. 이 안에선 뭘 하던 간섭 안 할 테니까.”

“왜 주웠어요?”

“응?”

“주제 넘는 소리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왜 절 주워 오셨.”

“주제 넘는 소리라는 걸 알면 하지 마.”



시린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작게 움트던 묘한 기분이 싹뚝 잘렸다. 방금까지의 분위기가 허상마냥 사그라들었다. 츠키시마에게로 향하는 눈길이 매섭다.



“죄송합니다.”



츠키시마는 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입장의 차이는 명백했다. 그가 갑, 그녀가 을. 지금이라도 그가 변심을 해 그녀를 밖으로 내돌린다면 분명히 5분도 채 되지 않아 처음과 같은 상황에 처해질 것이다.



“츳키.”

“....”

“츳키. 날 봐야지?”



츠키시마는 말 잘 듣는 애완 동물마냥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쿠로오는 금세 서로간의 거리를 좁혔다.



“츳키. 케이. 잠깐이지만 내가 본 너는 똑똑해. 예쁘고. 넌 지금 네가 처한 상황을 상당히, 아주 잘 이해하고 있어. 그렇지?”

“네.”

“그럼 내가 말하지 않아도 우리 사이의 마지노선이 어디까지 인지도 잘 알 거야.”

“네.”

“좋아. 역시 착한 아이네.”



쿠로오의 손이 아까와 같이 츠키시마의 머리를 헝크렸다. 행동만은 방금과 한치도 다를 바가 없었지만 츠키시마는 그 행동에서 명백히 다른 감정을 느꼈다.



“이 곳에서는 뭘 하던 간섭 안 할 거니까 하고 싶은 건 다 해. 필요한 거 있으면 나한테 말하고.”

“네.”

“오늘은 일이 좀 있으니까 혼자 자야겠다. 옷은 가져다 줄 거니까 씻고. 문단속 잘 해야 되는 거 알지? 아, 당연하지만 혼자 나가는 건 안 돼.”

“네.”



태엽 인형마냥 같은 대답을 내놓는 츠키시마의 이마에 가볍게 입 맞춘 쿠로오는 피와 오물로 더러워진 옷을 벗으며 화장실로 걸어 들어갔다. 딸깍이는 소리와 함께 화장실 문이 닫히자 그제야 츠키시마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바닥에 주저앉았다.



마침내 참고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뜨겁게 쏟아져 내리는 눈물의 온도를 느끼며 그녀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내가 잡은 동앗줄은 썩은 동앗줄이었어.



츠키시마는 몸을 웅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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